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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문수보살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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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4,306회 작성일 21-07-0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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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문수보살에게 말했다.

 “문수여, 그대가 유마를 찾아가 병 문안을 하고 오너라.”

 문수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유마를 찾아가 병 문안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는 존재하는 있는 형상 있는 것들의 이치를 깊이 깨달아 법문을 잘하여 상대방을 감동시키며, 비유를 들어 설명함에 막힘이 없고 지혜가 걸림이 없으며, 보살이 이룩한 성취도를 막힘이 없고 지혜가 걸림이 없으며, 보살이 이룩한 성취도를 모두 터득하였고 부처님의 모든 미묘 법문을 알고 있으며, 잘못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며, 신통이 부처님 못지 않습니다. 그러한 유마가 병이 들어 누워 있으니 부처님을 대신하여 제가 가서 위로하고 오겠습니다.”

 거기에 있던 모든 대중들은 무수를 따라 비야리성으로 들어가 유마의 집으로 향했다. 이 때 유마는 자리에 누워 문수가 여러 대중들과 함께 오는 것을 관하여 보고 신통력으로 자신이 누워 있는 방을 평상만 있는 빈 방으로 만들어 놓고 문수의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5-2) 문수가 유마의 집에 도착하여 그가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가니 혼자 평상 위에 누워 있을 뿐 아무 것도 없었다.

 유마 : “어서 오십시오. 문수여, 당신은 온다는 모습 없이 왔으며, 본다는 모습 없이 보고 있습니다.”

 문수 : “그렇습니다. 유마여, 왔다 하여도 온 것이 아니며 갔다 하여도 간 것이 아닙니다. 왔다는 것은 쫓아서 온 데가 없고 갔다해도 간 데가 없으며, 본다는 것도 실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보는 것이니 본다해도 본 것이 아닙니다. 

 유마여, 병은 좀 어떻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지극한 마음으로 당신의 병이 낫기를 기원하고 계십니다. 거사님의 병은 무슨 인연으로 생겼으며, 얼마나 오래 되었으며, 어떻게 하면 낫겠습니까?”

 유마 : “무명으로부터 애착이 생겨서 이 몸에 병이 난 것입니다. 일체 중생이 병이 들었으므로 나도 병이 들었으니, 만일 일체 중생의 병이 없어진다면 내 병도 없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위하여 나고 죽음이 있는 현상세계에 머무르는 것이며, 나고 죽음이 있으면 병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 중생이 깨달음을 성취하여 부처가 되어 병을 여의면 보살의 병은 저절ㄹ 없어질 것입니다.

 비유하여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외아들을 두었는데 그 아들이 병이 나면 부모도 병이 나고, 아들의 병이 나으면 부모의 병도 낫는 것처럼 보살의 병도 그와 같아서 중생 사랑하기를 아들과 같이 하므로 밝지 못한 중생이 병 들면 보살도 병이 들고, 중생이 병이 나으면 보살도 병이 낫는 것입니다.

 이 몸에 병이 생긴 인연은 모든 생명들을 내 몸과 같이 생각하며 형상있는 것들이 시시각각으로 허루어져 가는 것을 불쌍히 여기는 대비심으로 생긴 것입니다.”

 (5-3) 문수 : “유마여, 당신의 방은 어찌하여 비어 있으며, 병든 몸인데 시중을 드는 시자도 없습니까?”

 유마 : “본래 부처의 세계가 비어 있으므로 이 방도 비어 있습니다.”

 문수 : “어떤 상태를 비어 있다고 하는 것입니까?”

 유마 : “존재 실상은 본래 공한 것이므로 비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문수 : “그러면 본래 공한 것을 어떻게 체험 할 수가 있습니까?”

 유마 :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고 하는 분별심을 떠나고 나면 본래 공한 세계를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문수 : “그러면 당신이 말하는 공이라는 것은 분별 할 수 있습니까?”

 유마 : “공이라는 것도 진리의 세계를 나타내는 하나의 표현 일 뿐이므로 분별이라는 것도 또한 공한 것입니다.”

 문수 : “그러면 공이라는 것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입니까?”

 유마 : “진리의 눈으로 보면 번뇌가 곧 깨달음이며 죽음이 곧 삶이지만, 미혹의 눈으로 보면 깨달음도 번뇌이며 삶 또한 죽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공의 세계는 이 우주의 어디든지 존재하고 있지만 드러나지 않을 뿐입니다.”

 문수 : “드러나지 않는 것을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유마 : “해가 있어도 장님을 해를 볼 수 없는 것처럼 미혹한 마음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부처의 마음이 되면 저절로 드러나게 됩니다.”

 문수 : “어떻게 하면 부처의 마음이 될 수 있습니까?”

 유마 : “중생을 버리지 않고 철저하게 중새과 더불어 살 때 부처의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5-4) 문수 : “그러면 당신은 왜 시자가 없습니까?”

 유마 : “나는 지금도 많은 시자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모든 마군이와 외도들이 나의 시자입니다. 왜냐하면 마군이는 생사를 좋아하지만 보살은 생사에 물들지 아니하며, 외도들은 모든 소견을 좋아하는데 보살은 모든 소견에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수 : “거사님의 병은 어떤 모양입니까?”

 유마 : “내 병은 형상이 없어 볼 수가 없습니다.”

 문수 : “몸으로 생겨난 병 입니까? 마음으로 생겨난 병 입니까?”

 유마 : “몸은 본래 공한 것이므로 몸으로 생겨난 병은 아니며, 마음은 본래 요술장이 같아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므로 마음으로 생겨난 병도 아닙니다.”

 문수 : “그러면 지대, 수대, 화대, 풍대 중 어디에서 생긴 병입니까?”

 유마 : “이 병은 지대의 병도 아니며 그렇다고 지대를 여윈 것도 아닙니다. 수대, 화대, 풍대 또한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중생의 병은 4대를 쫓아 일어나며, 지금 중생이 병이 들어있기 때문에 나도 병이 들었을 뿐입니다.”

 (5-5) 문수 : “유마여, 그러면 병이 난 보살에게는 어떻게 위문하여야 합니까?”

 유마 : “몸이 무상하다고 말할지언정 몸을 여의라고 말하지 말 것이며, 몸이 괴로운 것이라고 말할지라도 이 몸을 떠나 궁극적인 자쥬와 평안의 세계인 열반이 없음을 말할 것이며, 몸이 공하다고 말할지언정 필경에는 그 공 속에서 모든 것이 생겨나는 묘유의 진리를 말할 것이며, 이제까지 지은 죄를 참회하라고 말하면서도 과거에 얽매이지 않아 현재를 놓치지 않도록 할 것이며, 자신의 병을 보고 남의 병을 불쌍히 여겨야 하며, 과거 지나간 세상에서 한량없이 고통 받던 것을 알아 일체 중생을 이익 되게 할 것이며, 어떤 잘못된 일을 근심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여 잘못된 것을 극복하여 바르게 할 것이며, 유명한 의사가 되어 중생의 병을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치료할 것이며, 보살은 이와 같은 마음을 내고 행동하여 병등 보살을 기쁘게 하면 저절로 위문이 됩니다.”

 (5-6) 문수 : “거사님, 그러면 병이 있는 보살이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하겠습니까?”

 유마 : “원래 모든 병은 집착으로부터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병이 있는 보살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됩니다. 병이란 억겁의 세월을 윤회하면서 욕심내는 마음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을 일으켜 진실하지 않은 것에 집착함으로써 생긴 것이기 때문에 원래 내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음을 철저하게 깨달음으로 욕심내는 마음으로부터 벗어나고, 나와 대상이 하나임을 철저하게 깨달음으로 성내는 마음으로부터 벗어나며, 나와 대상의 상의성을 철저하게 깨달아 어리석은 마음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병을 다스릴 수가 있습니다.”

 (5-7) 병의 근본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어떠한 병이라도 치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병을 병으로 생각하고 치유할려고 하면 근복적으로 치유 될 수 없습니다. 거룩한 생각으로 꽉 차 있는 사람에게는 나쁘고 사악한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수 없는 것처럼 바른 법을 생각함으로써 중생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사라지며 중생이라는 생각이 없으면 병은 저절로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법이라는 생각에 집착하다 보면 법에 빠지게 됩니다. 취하고 버림이 있는 간택심만 없으면 법에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평등하다가는 것은 법과 법 아닌 것의 구별이 없는 것을 뜻합니다. 지극한 한마음으로 대하면 법 아닌 것이 없기 때문에 간택심만 버리면 모든 것이 법인 것입니다.

 이러한 평등한 마음을 얻게 되면 차별이 없어지게 되므로 병이 더 이상 병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결국 병과 보살이 둘이 아니므로 병은 저절로 없어지게 됩니다. 설사 몸에 괴로움이 있더라도 성내는 마음이 가득하여 지옥의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을 생각하거나, 어리석은 마음이 가득하여 축생의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을 생각한다면 몸에 있는 괴로움은 저절로 없어질 것입니다.

 (5-8) 나와 남의 구별로부터 떠나야 보살이 되듯이 진정한 보살은 안과 밖의 구별이 없습니다. 내 안이 산란하면 아무리 조용한 세상이라도 시끄럽게 보이는 것이며, 세상이 아무리 떠들썩 하여도 마음이 적정하여 삼매에 들어 있으면 떠들썩한 것은 떠들썩한 그대로 적정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잘못되고 미혹된 생각에서 벗어나면 이 세상은 그대로 우주 삼매에 들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문수여, 이렇게 되면 보살의 병은 저절로 나을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보살이 해야 할 일은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니, 생사의 도리를 분명하게 밝히지 못하면 아무리 수행한다고 앉아 있어도 땀을 흘려가며 땅을 파는 농부보다 못한 것이며, 번뇌를 다스린다고 수행자로 남아 있어도 거룩한 수행자에게 정성껏 공양 올리는 보시자보다 못한 것입니다. 늙고 병들고 죽음을 한꺼번에 끊을 수 있는 지혜의 칼을 가지고 있어야 보살이라 할 것입니다.

 (5-9) 보살은 보살의 병이 방편으로 생긴 것처럼 중생의 병도 병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중생들의 병을 꼭 낫게 하겠다는 큰 자비심을 일으켰다 하더라도 결과에 집착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보살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자비심으로 중생을 보살피지만 결과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이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자비심으로 행하되 결과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으면 고달프고 힘든 일을 하면서도 마음이 즐거워 얽매임의 원인을 만들지 않습니다. 스스로 얽매임이 없어야 다른 사람의 얽매임을 풀어줄 수 있습니다. 집착함이 없이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또 방편이 없는 지혜는 얽매임이요, 방편이 있는 지혜는 얽매임에서 벗어나게 하며, 지혜가 없는 방편은 얽매임이요, 지혜가 있는 방편은 얽매임에서 벗아나게 합니다.

 (5-10) 예를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법의 공한 실체를 모르고 집착하는 마음으로 중생들을 교화하여 극락세계를 이루게TEk고 하는 것은 방편이 없는 지혜로 얽매임이 되는 것이며, 법의 공한 실체를 체득하여 집착하는 마음이 없이 지극한 마음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면 중생들은 교화되어 저절로 극락세계가 이루어지는 방편이 있는 지혜는 얽매임에서 벗어남이 되며, 어떤 사람이 욕심 내는 마음과 성 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으로 번뇌에 머물면서 공덕의 씨앗을 뿌린다면 지혜가 없는 방편으로 이것도 또한 얽매임이 되는 것이며, 만약 어떤 사람이 욕심을 내지 않고 성을 내지 않는 밝은 마음으로, 번뇌를 떠난 지극한 마음으로 공덕의 씨앗을 뿌린다면 위 없는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게 될 것이며 이것은 지혜가 있는 방편으로써 얽매임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문수여, 이 몸이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며 나라고 할 것이 없음을 관하는 것이 지혜이며, 몸은 비록 병이 났으나 삶과 죽음속에 있으면서도 삶과 죽음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중생들을 이익 되게 하면서 항상 부지런한 것은 방편이며, 몸과 병이 둘이 아닌 줄 알아 몸과 병을 함R 잘 다스리는 것은 지혜이며, 비록 이 몸에 병이 있지만 중생들을 위하여 영원히 열반에 들지 않는 것은 방편이니 병이 있는 보살은 이렇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않는 곳에도 머물지 말며, 마음을 다스리는 곳에도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다스리지 않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며, 마음을 다스릴 줄만 아는 자는 자신 밖에 모르는 수행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가지 법을 떠나 있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5-11) 생사 속에 있으면서도 나쁜 행위를 하지 않고, 열반에 머물면서도 열반만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며, 평범한 삶과 성인의 위대한 삶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며, 더러운 행위나 깨끗한 행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며, 마군이와 어울려 마군이와 같이 행동을 하면서도 마군이의 마음을 감동시켜 스스로 선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보살행이며, 일체의 지혜를 구하면서도 지혜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며, 법의 존재 실상을 여실히 알면서도 바른 법만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며, 12인연을 관하여 존재의 상의성을 여실히 알면서도 바른 생각만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며, 모든 중생들을 사랑하면서도 애착하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며, 세속과 멀리 떨어지기를 좋아하면서도 세속에 머무는 것이 보살행이며, 육도를 윤회하면서도 육도에 물들지 않는 것이 보살행입니다.

 (5-12) 공한 것을 행하면서도 공덕의 씨앗을 심는 것이 보살행이며, 모양 없는 것을 행하면서도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보살행이며, 집착하지 않고 행하면서도 몸을 받는 것이 보살행이며, 일어남이 없는 것을 행하면서도 일체의 착한 행을 일으키는 것이 보살행이며, 육 바라밀을 행하면서도 중생의 마음과 마음의 작용들을 모두 아는 것이 보살행이며, 육신통을 행하면서도 신통의 위력에 집착하여 번뇌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며, 사무량심을 행하면서도 하늘 나라에 나는 것을 탐내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며, 선정에 들어 삼매 속에 있으면서도 범부들과 같이 행동하는 것이 보살행이며, 사념처를 행하면서도 몸과 느낌과 마음과 법을 떠나지 않고 그 속에 함께 있는 것이 보살행이며, 사정근을 행하면서도 몸과 마음으로 정진함을 버리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며, 사여의족을 행하면서도 자재한 신통을 얻는 것이 보살행이며, 오근을 행하면서도 중생들의 영리함과 우둔함을 분별하는 것이 보살행이며, 5력을 행하면서도 부처님의 십력을 구하는 것이 보살행이며, 7가지를 행하면서도 부처님의 지혜를 분별하는 것이 보살행이며, 팔정도를 행하면서도 한량없는 부처님의 도를 좋아하는 것이 보살행이며, 지와 관으로 도를 돕는 법을 행하면서도 끝끝내 적멸한데 떨어지지 않는 것이 보살행이며, 형상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삼십이상과 팔십종호로 몸을 장엄하는 것이 보살행이며, 깨끗함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형편에 따라 몸을 나타내는 것이 보살행이며, 부처님 나라의 고요함이 허공과 같음을 알아 청정한 세계를 나타내는 것이 보살행이며, 깨달음을 성취하여 부처를 이루었으면서도 끝내 보살행을 버리지 않는 것이 보살의 행입니다.”

 유마가 이렇게 법문했을 때 문수가 데리고 온 모든 애중들은 위 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마음을 밝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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