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금강경독송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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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분 다시 세상으로 내려와(究竟無我分)
(17-1) 부처님이시여,
보살이 되려고 마음을 낸 자가 <가장 높은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겠다는 마음을 내었을 때 어
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수행하며 어떻게 마음을
지켜야 합니까?
(17-2) 수부티야,
보살이 되려고 마음을 낸 자가 <가장 높은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겠다고 마음을 내었으면 먼
저 <생명 있는 모든 것을 깨달음에 들도록 하겠
다>는 서원을 세워야 한다. <가장 높은 바른 깨
달음>을 성취하겠다는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하였다 하더라도 깨달음의 세
계로 인도된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것이다.
(17-3) 왜냐하면 수부티야,
보살이 <내가 있다는 생각>, <상대가 있다는 생
각>, <다른 생명들이 있다는 생각>, <영원한 것
이 있다는 생각>에 집착하면 이미 보살이 아닌
것이다.
(17-4) 그리고 수부티야,
가장 높은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겠다고 마음을
낸 자는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이 실체가 없다
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17-5) 수부티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가 연등부처님 밑에서 수행할 때 존재하는 법
이 있어 <가장 높은 바른 깨달음>을 얻었겠느냐?
아닙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연등부처님에게 어떤 법이 있어
서 <가장 높은 바른 깨달음>을 이루신 것이 아
닙니다.
(17-6) 그렇다. 수부티야,
실로 존재하는 법이 있어서 부처가 <가장 높은
바른 깨달음>을 성취한 것은 아니다.
만일 어떤 법이 있어서 부처가 <가장 높은 바른
깨달음>을 이루었다면,
연등부처님께서
‘젊은 수행자여, 그대는 다음 세상에 반드시 부
처가 되어 이름을 석가모니라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가장 높은 바른 깨달음>은 실상이 없으
므로 연등부처님께서 나를 보시고 ‘젊은 수행자
여, 그대는 다음 세상에 반드시 부처가 되어 이
름을 석가모니라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
이다.
(17-7) 수부티야,
여래라는 것은 궁극적 실체를 드러낸 존재의 본
질이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여래가 <가장 높은 바른 깨달음을
지금 성취했다>고 하더라도 실재로는 깨달음의
실상이 있는 것이 아니다.
(17-8) 수부티야,
부처가 깨달아 보인 <가장 높은 바른 깨달음>에
는 진실한 것도 없고 허망한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다 불법이다’라고 말한 것
이다.
(17-9) 수부티야,
일체 법이라는 것은 일체 법이 아니라고 여래께
서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일체 법이라 해
서는 안되는 것이다. 법의 실상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으므로 그냥 일체 법이라고 말하는 것
이다.
(17-10) 수부티야,
몸이 수미산만 하다고 할 때 몸의 실상을 말하
는 것이 아니라 이름이 몸이라는 것과 같은 것
이다.
(17-11) 부처님이시여,
수미산만한 몸이라고 말한 것은 몸이 아니라고
부처님께서 말했습니다. 그래서 몸이라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수미산만한 몸의 실상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으므로 그냥 수미산만한 몸이라
고 말하는 것입니다.
(17-12) 수부티야,
보살도 이와 같은 것이다.
만일 <내가 많은 생명들을 깨달음의 세계로 들
게 하였다>는 생각을 일으키면 그는 이미 보살
이 아닌 것이다.
(17-13) 왜냐하면 수부티야,
우리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허망하여 실
은 살아있는 것이 아닌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냥 살아있는 것으로 말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에는 <내가 있
다는 생각>, <상대가 있다는 생각>, <다른 생명
들이 있다는 생각>, <영원한 것이 있다는 생각>
도 없는 것이다.
(17-14) 수부티야,
어떤 보살이 <내가 이 세상을 부처의 나라로 만38
들었다>는 생각을 일으키면 그는 이미 보살이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의 나라라고 하는 것도 부처의 나
라가 아니라고 여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부처의 나라>라고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부
처의 나라의 실상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으므로
그냥 부처의 나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17-15) 수부티야,
만약 보살이 <나라는 것은 없다>, <형상 있는
모든 것은 허망한 것이다> 라고 철저히 깨달아
안다면 그는 진정한 보살이 되는 것이다.
제 18분 하나의 생명체(一體同觀分)
(18-1) 수부티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처에게는 육신의 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에게는 육신의 눈이 있습니다.’
(18-2) 수부티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처에게는 하늘나라를 볼 수 있는 하늘의 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에게는 하늘나라를 볼 수 있는 하늘의 눈이
있습니다.
(18-3) 수부티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처에게는 존재의 관계성을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에게는 존재의 관계성을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이 있습니다.
(18-4) 수부티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처에게는 존재의 본질을 볼 수 있는 법의 눈
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에게는 존재의 본질을 볼 수 있는 법의 눈
이 있습니다.
(18-5) 수부티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처에게는 깨달음의 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에게는 깨달음의 눈이 있습니다.
(18-6) 수부티야,
갠지즈강의 모래에 대하여 부처가 말한 적이 있
느냐?
그렇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는 갠지즈강의 모래에 대하여 말씀
하셨습니다.
수부티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갠지즈강의 모래 수만큼의 갠지즈강이 있고 그
많은 모래 수만큼 세계가 있다고 한다면 이 세
계는 많겠느냐?
매우 많겠습니다. 부처님이시여.
(18-7) 부처는 이렇게 많은 세계에 있는 살아있
는 생명들의 가지가지 마음의 작용들을 모두 알
고 있다.
왜냐하면 부처가 말한 마음은 마음이 아니고 그
이름이 마음이기 때문이다.
(18-8) 그렇기 때문에 수부티야,
과거에 일어났던 생각도 원래 없는 것이며,
지금 일어나는 생각도 원래 없는 것이며,
미래에 일어날 생각도 원래 없는 것이다.
제 19분 진실한 베품(法界通化分)
(19-1) 수부티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보살이 되려고 마음을 낸 자가 한없이 넓은 우
주에 가득 채워진 일곱 가지 보물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다면 공덕을 많이 쌓겠느냐?
(19-2) 그렇겠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이 사람은 이 행위로 매우 많은 공덕을 쌓겠습
니다.
(19-3) 수부티야,
<공덕을 쌓는다> 하는 것은 공덕을 쌓는 것이
아니라고 여래께서 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
공덕을 쌓는다>라고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공
덕을 쌓는다>의 실상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으
므로 그냥 <공덕을 쌓는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42
그렇기 때문에 공덕을 쌓는 일이 있다면 부처님
께서는 공덕을 쌓는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제 20분 텅 빈 곳에서 채워지는 형상(離色離相分)
(20-1) 수부티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뛰어난 모습을 갖추고 있으면 부처라고 할 수
있겠느냐?
(20-2)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뛰어난 모습을 갖추고 있는 몸이라 하더라도 부
처로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뛰어난 모습을 갖추고 있는 몸>이란
것은 <뛰어난 모습을 갖추고 있는 몸>이 아니라
고 여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뛰어난 모
습을 갖추고 있는 몸>이라 해서는 안되는 것입
니다. <뛰어난 모습을 갖추고 있는 몸>의 실상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으므로 그냥 <뛰어난 모습을
갖추고 있는 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0-3) 수부티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서른 두가지 모양의 신체적 특징이 있는 자>라
면 부처라고 볼 수 있느냐?
(20-4) 아닙니다. 부처님이시여,
<서른 두가지 모양의 신체적 특징이 있는 자>라
하더라도 부처라고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신체적 특징이 있다>는
것도 신체적 특징의 실상을 말로 표현할 수 없
기 때문에 그냥 <신체적 특징이 있다>라고 말하
는 것입니다.
제 21분 마음을 꿰뚫고(非說小說分)
(21-1) 수부티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가 법을 설했다는 생각이 여래에게 일어나겠
느냐?’
부처님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법을 설했다>는 생각이 여래에게는 일어
나지 않습니다.44
(21-2) 수부티야, 바로 그렇다.
<여래가 법을 설했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진실이 아닌 것에 집착하여 여래를 비방하
는 것이 된다.
(21-3) 수부티야,
<법을 설한다>는 것은 원래 설해져야 할 법은
없는 것이니 그 이름이 설법인 것이다.
(21-4) 부처님이시여,
이천오백 년 후 바른 법을 믿는 사람이 없을 때
이러한 법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는 사람이 있
겠습니까?
(21-5) 수부티야, 그런 생각 하지마라. 믿는 마음
을 내는 사람은 당연히 있게 마련이다.
그들은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존재하지 않는 것
도 아니다.
왜냐하면 수부티야,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래께서 말씀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되는 것
이다. 존재하는 것의 실상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으므로 그냥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이다.
- 다음글제 24분 경전에 매이지 않고(福智無比分) 21.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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