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돈황본육조단경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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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작성일 21-08-05 17:06 조회 7,685 댓글 0본문
해탈과 편안으로 이끄는 견성에 대한 가르침
우리말 육조단경
번역: 김성규
경의 구조
서분 --- 서언
본론
육조혜능의 행적 및 불연
법문을 설함
법에 대한 물음 및 대답
법을 전함
유통분 --- 후기
돈황본 육조단경
목차
서문 .............................................................................................................7
서언 序 言 .................................................................................................9
I. 육조혜능의 행적 및 불연
1 스승을 찾아감尋 師 ..................................................................................11
2 게송을 지으라 이르심命 偈 ......................................................................13
3 신수神 秀 ..................................................................................................15
4 게송을 바침呈 偈 ......................................................................................18
5 법을 받음受 法 .........................................................................................21
5 보. 보림保 臨 ............................................................................................24
II. 법문을 설함
6 정혜定 慧 ..................................................................................................25
7 무념無 念 ..................................................................................................28
8 좌선坐 禪 ..................................................................................................31
9 삼신三 身 ..................................................................................................34
10 네가지 원四 願 .......................................................................................38
11 참회懺 悔 ................................................................................................40
12 삼귀의三 歸 ............................................................................................41
13 성공性 空 ................................................................................................43
14 반야般 若 ................................................................................................45
15 근기根 機 ................................................................................................48
16 견성見 性 ................................................................................................50
17 돈오頓 悟 ................................................................................................51
18 죄를 없앰滅 罪 .......................................................................................54
III. 법에 대한 물음 및 대답
19 공덕功 德 (위사군이 물음) .....................................................................57
20 서방극락西 方 ........................................................................................59
21 수행修 行 ................................................................................................63
22 교화를 행하심行 化 (소주와 광주에서 40년 교화) ................................68
23 단박에 닦음頓 修 (신수와 혜능과의 관계) .............................................70
24 부처님의 행佛 行 (법달이 법화경에 대해서 물음) .................................74
25 예배하고 법을 물음參 請 (지상과 신회가 와서 물음) ............................79
IV. 법을 전함
26 상대법對 法 ............................................................................................81
27 참됨과 거짓眞 假 ....................................................................................87
28 게송을 전함傳 偈 ....................................................................................91
29 법을 전한 계통傳 統 ...............................................................................97
30 참 부처眞 佛 ........................................................................................100
31 멸도滅 度 .............................................................................................105
후기後 記 .............................................................................................107
부록_육조단경 강의록 ......................................................................111
서 문
2015년 11월에 시작한 육조단경 강의가 7개월 만에 끝났습니다. 강의의 교본은 돈황본 육조단경입니다. 덕분에 겨울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봄이 오고 오월이 되었습니다.
무념, 무상, 무주, 무심, 내외명철, 돈오, 견성 등을 이해하기 쉽게 전하려고 그림을 그려 설명을 하였고 부록편에 강의 노트를 첨부하였습니다. 인연 있는 사람들 모두 공부 잘 했으면 좋겠습니다.
육조단경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경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말합니다. 1200년 후 중국 혜능대사가 설한 것을 경이라 이름 붙인 것은 부처님의 깨침으로 성립한 불교의 탄생과 버금가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경전이 인도의 옷을 입고 있다면 육조단경은 중국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AD 67년에 불교가 중국에 전래 된 이래 6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거치면서 중국에 토착화 된 새로운 불교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육조단경은 토착화 된 중국 문화권과 융합된 새로운 불교를 완성시킨 것입니다. 근본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 밀교의 인도를 거쳐 중국에서 꽃 핀 육조단경은 새로운 불교의 흐름인 선불교의 창출을 의미합니다.
돈황본 육조단경의 한문의 잘못된 표기를 바로 잡았으며 내용 전개로 보아 견성한 순간과 견성하고 난 뒤의 보림에 대한 미흡한 부분을 외람되게 보충하였습니다.
우리말 육조단경으로 말미암아 인생의 새로운 빛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부처 꽃은
때도 곳도 없이 피는데
할!
2016년 5월 28일
淨 名 김 성 규
서 언(序言)
혜능대사가 대범사 강당의 높은 법좌에 올라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하고 무상계를 주니, 그때 강당에는 비구, 비구니, 도교인, 일반인 등 일 만여 명이 있었다.
소주 자사 위거와 여러 관료 삼 십여 명과 유가의 선비 몇몇 사람들이 대사에게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해 주기를 함께 청하였고, 자사는 문인 법해로 하여금 법문을 모아서 기록하게 하였다.
이때 설해 진 법문을 「육조단경」이라 하여 후대에 널리 전도하여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함께 이 종지를 이어받아서 서로서로 전수하였으며, 도를 구하는 자는 이 단경에 의지하여 이루는 바가 컸다.
惠能大師(혜능대사) 於大梵寺講堂中(어대범사강당중) 昇高座(승고좌) 說摩訶般若波羅蜜法(설마하반야바라밀법) 授無相戒(수무상계) 其時座下(기시좌하) 僧尼道俗一萬餘人(승니도속일만여인)
韶州刺史韋據(소주자사위거) 及諸官僚三十餘人(급제관료삼십여인) 儒士餘人(유사여인) 同請大師說摩訶般若波羅蜜法(동청대사설마하반야바라밀법) 刺史遂令門人僧法海集記(자사수령문인승법해집기)
流行後代(유행후대) 與學道者(여학도자) 承此宗旨遞(승차종지체) 相傳授有所依約以爲稟承說此(상전수유소의약이위품승설차) 壇經(단경)
1. 스승을 찾아감(尋師)
(1-1) 혜능대사가 말씀하였다.
“선지식들아, 마음을 깨끗이 하여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생각하라!”
대사께서는 말씀하지 않고 스스로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고 한참 동안 묵묵한 다음 이윽고 말씀하였다.
“선지식들아, 조용히 들어라. 혜능의 아버지의 본관은 범양인데 좌천되어 영남의 신주 백성으로 옮겨 살았고 혜능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다. 살기가 힘들어 늙은 어머니와 외로운 아들은 남해로 옮겨 와서 장터에서 땔나무를 팔며 가난하게 살았다.”
어느 날 한 손님이 땔나무를 샀다. 혜능은 관숙사(官宿舍)까지 나무를 가져다주었고, 나무 값을 받고 문을 나서려 하는데, 때마침 한 손님이 「금강경」을 읽고 있었다. 혜능은 한 번 들음에 마음이 밝아져 문득 깨치고, 이내 손님에게 물었다.
“어느 곳에서 오셨습니까? 지금 읽고 있는 그 경전은 무엇입니까?”
손님이 대답하였다.
“나는 기주 황매현 동빙무산에 계시는 오조 홍인대사를 찾아 뵈었는데, 지금 그곳에는 제자가 천 명이 넘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오조대사가 승려와 속인들에게 방금 내가 읽은 이 「금강경」 한 권만 지니고 읽으면 곧 자성을 보아 바로 부처를 이루게 된다고 권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혜능은 숙세의 업연이 있어서, 곧 바로 어머니가 생활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놓고 황매의 빙무산으로 가서 오조 홍인대사를 찾아 뵈었다.
(1-2) 홍인대사께서 혜능에게 물었다.
“너는 어느 곳 사람인데 이 산까지 나를 찾아 왔으며, 나를 찾아온 목적이 무엇이냐?”
혜능이 대답하였다.
“저는 영남 사람으로 신주의 백성입니다. 지금 멀리서 와서 대사님을 찾아 뵌 것은 오직 부처 되는 법을 구할 뿐입니다.”
홍인대사께서는 혜능에게 꾸짖듯이 말씀하였다.
“너는 영남 사람이며, 오랑캐인데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단 말이냐?”
혜능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으나 부처의 성품은 남북이 없습니다. 오랑캐의 몸은 스님과 같지 않으나 부처의 성품에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
홍인대사는 더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좌우에 제자들이 둘러 서 있는 것을 보고 더 말씀하지 않았다.
그리고 혜능을 내보내 대중을 따라 일하게 하니, 그때 혜능은 행자가 이끄는 대로 방앗간으로 가서 여덟 달 동안 방아를 찧었다.
하루는 홍인대사가 방앗간 앞을 지나가면서 일하고 있는 혜능에게 물었다.
“방아를 잘 찧고 있느냐?”
혜능이 대답하였다.
“방아를 벌써 다 찧어 놓고 키질만 남았습니다.”
一. 尋 師
(1-1)能大師言 善知識 淨心 念摩訶般若波羅蜜法 大師不語 自淨心神 良久乃言 善知識 靜聽 惠能慈父 本官 范陽 左降遷流嶺南新州百姓 惠能幼小 父小早亡 老母孤遺 移來南海 艱辛貧乏於市賣柴 忽有一客 買柴 遂領惠能 至於官店 客將柴去 惠能 得錢 却向門前 忽見一客 讀金剛經 惠能 一聞 心明便悟 乃問客曰 從何處來 持此經典 客 答曰 我於蘄州 黃梅縣東憑茂山 禮拜五祖弘忍和尙 見今在彼 門人 有千餘衆 我於彼聽見大師勸道俗 但持金剛經一
卷 卽得見性 直了成佛 惠能 聞說 宿業有緣 便卽辭親 往黃梅憑茂山 禮拜五祖弘忍和尙
(1-2)弘忍和尙 問惠能曰 汝何方人 來此山 禮拜吾 汝今向吾邊 復求何物 惠能 答曰 第子是嶺南人 新州百姓 今故遠來 禮拜和尙 不求餘物 唯求(作)佛法 大師遂責惠能曰 汝是嶺南人 又是獦獠 若爲堪作佛 惠能答曰 人 卽有南北 佛性 卽無南北 獦獠身 與和尙 不同 佛性 有何差別 大師欲更共議 見左右在傍邊 大師更不言 遂發遣惠能 令隨衆作務 時有一行者 遂差惠能於碓房 踏碓八箇餘月
2. 게송을 지으라 이르심(命偈)
(2-1) 오조 홍인대사께서 하루는 제자들을 불러 놓고 한 말씀하였다.
“내 너희들에게 말하니, 공부인에게는 나고 죽는 일이 크거늘 너희들은 종일토록 공양하며 다만 복 밭만을 구할 뿐 나고 죽는 괴로운 바다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너희들의 자성이 미혹하면 복의 문이 어찌 너희들을 구제할 수 있겠느냐? 너희들은 모두 방으로 돌아가 스스로 잘 살펴보아라.
지혜가 있는 자는 본래의 성품인 반야의 지혜를 스스로 써서 게송 한 수를 지어 나에게 가져오너라. 내가 너희들의 게송을 보고 본래 성품을 본 자가 있으면 그에게 가사와 법을 부촉하여 육대의 조사가 되게 하리니, 어서 빨리 서두르도록 하라.”
(2-2) 제자들은 스승의 말씀을 듣고 각자 방으로 돌아가 서로 말하였다.
“우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뜻을 써서 게송을 지어 스승님께 바칠 필요가 없다. 교수사인 신수상좌가 법을 얻은 후에는 신수상좌에게 의지하게 될 것이니 굳이 게송을 지을 필요가 없다.” 다른 제자들은 생각을 쉬고 감히 게송을 지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 화공 노진이 홍인대사의 방 앞에 있는 세 칸이나 되는 복도에 ‘능가변상’과 오조대사가 가사와 법을 전수하는 그림을 그려 후대에 전하여 기념하고자 벽을 살펴보고서 다음 날 착수하려고 하였다.
二. 命 偈
(2-1)五祖忍於一日(오조인어일일) 喚門人盡來 門人 集訖(환문인진래 문인 집흘) 五祖曰(오조왈) 吾向汝說 (오향여설) 世人 生死事大(세인 생사사대) 汝等門人(여등문인) 終日供養(종일공양) 只求福田 不求出離生死苦海(지구복전 불구출리생사고해) 汝等自性 迷 福門 何可救汝(여등자성 미 복문 하가구여) 汝憁且歸房自看(여총차귀방자간) 有智惠者 自取本性般若之知(유지혜자 자취본성반야지지) 各作一偈呈吾(각작일게정오) 吾看汝偈 若悟大意者(오간여게 약오대의자) 付汝衣法 稟爲六代 火急急(부여의법 품위육대 화급급)
(2-2) 門人 得處分 却來各至自房(문인 득처분 각래각지자방) 遞相謂言 我等 不須呈心用意作偈(체상위언 아등 불수정심용의작게) 將呈和尙(장정화상) 神秀上座 是敎授師(신수상좌 시교수사) 秀上座得法後 自可依止 請不用作(수상좌득법후 자가의지 청불용작) 諸人 息心(제인 식심) 盡不敢呈偈(진불감정게) 時大師堂前(시대사당전) 有三間房廊 於此廊下 供養(유삼간방랑 어차랑하 공양) 欲畵楞伽變 倂畵五祖大師(욕화능가변병화오조대사) 傳授衣法 流行後代 爲記(전수의법 유행후대 위기) 畵人 盧珍看壁了(화인 노진간벽료) 明日 下手(명일 하수)
3. 신 수(神秀)
(3-1) 신수상좌는 생각하였다.
‘모든 사람이 마음의 게송을 바치지 않는 것은 내가 교수사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마음의 게송을 바치지 않으면 스승님께서 나의 마음속의 견해가 얕고 깊음을 어찌 알겠는가. 내가 마음의 게송을 스승님께 올려 뜻을 밝혀서 법을 구함은 옳지만, 조사의 지위를 넘봄은 옳지 않다. 도리어 범인의 마음으로 성인의 지위를 빼앗음과 같다. 그러나 마음의 게송을 바치지 않으면 법을 얻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밤이 삼경에 이르면 사람들이 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남쪽 복도의 중간 벽 위에 마음의 게송을 지어서 써 놓고 법을 구하기로 작정하였다. 만약 스승께서 게송을 보고 당치 않다고 하시면 나의 전생 업장이 두터워서 당연히 법을 얻지 못함이니, 성인의 뜻은 알기 어려우므로 내 마음을 스스로 쉴 것이다.’
(3-2) 신수상좌가 밤중에 촛불을 들고 남쪽 복도의 중간 벽 위에 게송을 써 놓았으나 사람들이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게송은 다음과 같았다.
몸은 보리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으니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과 먼지 묻지 않게 하라.
(3-3) 신수상좌가 이 게송을 써 놓고 방에 돌아와 누웠으나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홍인대사께서 아침에 노화공을 불러 남쪽 복도에 ‘능가변상’을 그리게 하려다가, 벽에 있는 이 게송을 보았다. 다 읽고 나서 노화공에게 돈 삼만 냥을 주면서 말씀하였다.
“공봉이여, 변상을 그리지 않아도 된다. 「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무릇 모양이 있는 모든 것은 다 허망하다 하였다. 이 게송을 그대로 두어서 미혹한 사람들로 하여금 외우게 하여, 이를 의지하여 행을 닦아서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만 못할 것이다. 이 게송에 의지하여 행을 닦으면 사람들에게 큰 이익이 있을 것이다.”
이윽고 홍인대사께서 제자들을 다 불러 놓고 게송 앞에 향을 사르게 하니, 사람들이 보고 모두 공경하는 마음을 내자 홍인대사께서 말씀하였다.
“너희들은 모두 이 게송을 외워라. 외우는 자는 자성을 볼 것이며, 이를 의지하여 수행하면 곧 타락하지 않을 것이다.”
제자들이 모두 외우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훌륭하다!’고 말하였다.
(3-4) 홍인대사는 신수상좌를 거처로 불러서 물었다.
“네가 이 게송을 지은 것이냐? 만약 네가 지은 것이라면 마땅히 나의 법을 얻을 것이다.”
신수상좌가 말하였다.
“부끄럽습니다. 실은 제가 지었습니다만 감히 조사의 자리를 구함이 아니오니, 바라건대 스승님께서는 자비로써 보아주십시오. 제자가 작은 지혜라도 있어서 본래성품을 알았습니까?”
홍인대사께서 말씀하였다.
“네가 지은 이 게송은 소견은 당도하였으나 다만 문 앞에 이르렀을 뿐 아직 문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했다. 보통 사람들이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타락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견해를 가지고 위 없는 보리를 찾는다면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모름지기 문안으로 들어와야만 자기의 본성을 볼 수 있다. 너는 우선 돌아가 며칠 동안 더 생각하여 다시 한 게송을 지어서 나에게 보여라. 만약 문안에 들어와서 자성을 보았다면 마땅히 가사와 법을 너에게 부촉할 것이다.”
신수상좌는 돌아가 며칠을 지냈으나 게송을 짓지 못하였다.
三. 神 秀
(3-1)上座神秀思惟(상좌신수사유) 諸人 不呈心偈(제인 부정심게) 緣我爲敎授師(연아위교수사) 我若不呈心偈(아약부정심게) 五祖如何得見 我心中(오조여하득견아심중) 見解深淺(견해심천) 我將心偈(아장심게) 上五祖呈意 求法 卽善(상오조정의구법즉선) 覓祖 不善(멱조불선) 却同凡心 奪其聖位(각동범심 탈기성위) 若不呈心 終不得法(약부정심 종부득법) 良久思惟(양구사유) 甚難甚難(심난심난) 甚難甚難(심난심난) 夜至三更(야지삼경) 不令人見(불령인견) 遂向南廊下中間壁上(수향남랑하중간벽상) 題作呈心偈(제작정심게) 欲求於法(욕구어법) 若五祖見偈 言此偈語不堪(약오조견게 언차게어불감) 若訪覓我(약방멱아) 我宿業障重(아숙업장중) 不合得法(불합득법) 聖意難測(성의난측) 我心自息(아심자식)
(3-2)秀上座(수상좌) 三更 於南廊下中間壁上 秉燭題作偈(삼경 어남랑하중간벽상 병촉제작게) 人盡不知(인진부지) 偈曰(게왈)
身是菩提樹(신시보리수)
心如明鏡臺(심여명경대)
時時勤拂拭(시시근불식)
莫使有塵埃(막사유진애)
(3-3) 神秀上座題此偈畢(신수상좌제차게필) 歸房臥 竝無人見(귀방와 병무인견) 五祖平旦 遂喚盧供奉來 南廊下 畵楞伽變(오조평단 수환노공봉래 남랑하 화능가변) 五祖忽見此偈 讀訖 乃謂供奉曰(오조홀견차게 독흘 내위공봉왈) 弘忍 與供奉錢三十千(홍인 여공봉전삼십천) 深勞遠來(심로원래) 不畵變相也(불화변상야) 金剛經 云(금강경 운) 凡所有相 皆是虛妄(범소유상 개시허망) 不如留此偈(불여유차게) 令迷人誦(령미인송) 依此修行(의차수행) 不墮三惡(불타삼악) 依法修行 人有大利益(의법수행 인유대이익) 大師遂喚門人盡來(대사수환문인진래) 焚香偈前 人衆 入見(분향게전 인중 입견) 皆生敬心(개생경심) 五祖曰(오조왈) 汝等 盡誦此偈者 方得見性(여등 진송차게자 방득견성) 依此修行 卽不墮落(의차수행 즉불타락) 門人盡誦 皆生敬心 喚言善哉(문인진송 개생경심 환언선재)
(3-4) 五祖遂喚秀上座於堂內 問是汝作偈否(오조수환수상좌어당내 문시여작게부) 若是汝作 應得我法 秀上座言(약시여작 응득아법 수상좌언) 罪過(죄과) 實是神秀作(실시신수작) 不敢求祖(불감구조) 願和尙 慈悲看(원화상 자비 간) 弟子有小智慧(제자유소지혜) 識大意否(시대의부) 五祖曰 汝作此偈 見卽來到(오조왈 여작차게 견즉래도) 只到門前 尙未得入(지도문전 상미득입) 凡夫依此偈修行(범부의차게수행) 卽不墮落(즉불타락) 作此見解(작차견해) 若覓無上菩提 卽未可得 須入得門(약멱무상보리 즉미가득 수입득문) 見自本性(견자본성) 汝且去 一兩日來思惟(여차거 일양일래사유) 更作一偈(갱작일게) 來呈吾 若入得門 見自本性(내정오 약입득문 견자본성) 當付汝衣法 秀上座去(당부여의법 수상좌거) 數日作不得(수일작부득)
4. 게송을 바침(呈偈)
(4-1) 한 동자가 방앗간 옆을 지나가면서 이 게송을 외우고 있었다. 혜능은 한 번 듣고, 이 게송은 견성하지도 못했고 큰 뜻을 알지도 못한 것임을 알았다. 혜능이 동자에게 물었다.
“지금 외우는 것은 무슨 게송인가?” 동자가 말하였다.
“행자스님은 모릅니까? 홍인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나고 죽는 일이 크니 가사와 법을 전하고자 한다.’ 하시고, 제자들로 하여금 게송을 한 수씩을 지어 보이라 하였습니다. 큰 뜻을 깨쳤으면 가사와 법을 전하여 육대의 조사로 삼을 것이라 하셨는데, 신수상좌께서 문득 남쪽 복도 벽에 무상게(無相偈) 한 수를 써 놓았습니다. 홍인대사께서 모든 제자가 다 외우게 하고, 이 게송을 깨친 이는 곧 자기의 성품을 볼 것이니,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타락하지 않게 될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4-2) 혜능이 대답하였다.
“나는 여기서 방아 찧기를 여덟 달 동안 하였으나 아직 조사당 앞에 가 보지 못하였으니, 바라건대 그대는 나를 남쪽 복도로 인도하여 이 게송을 보고 예배할 수 있게 해 주게. 또한, 바라건대 이 게송을 외워 내생의 인연을 맺어 부처님 나라에 나기를 바라네.”
동자가 혜능을 인도하여 남쪽 복도에 이르렀다. 혜능은 곧 이 게송에 예배하였고, 글자를 알지 못하므로 누군가 읽어 주기를 청하였다. 혜능은 듣고서 곧 대강의 뜻을 알았다. 혜능은 또한 한 게송을 지어, 글을 쓸 줄 아는 이에게 청하여 서쪽 벽 위에 쓰게 하여 자신의 본래 마음을 나타내 보였다.
본래 마음을 모르면 법을 배워도 이익이 없으니, 마음을 알아 자성을 보아야만 큰 뜻을 깨닫는다. 라는 내용이었다.
혜능은 게송으로 말하였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가 없네.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거니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 있으리오.
또 게송으로 말하였다.
마음은 보리의 나무요
몸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이네
밝은 거울은 본래 깨끗하거니
어느 곳이 티끌과 먼지에 묻으리오.
게송을 짓고 혜능은 방앗간으로 돌아갔다. 절 안의 대중들이 혜능이 지은 게송을 보고 다들 괴이하게 여겼다. 홍인대사께서 문득 혜능의 게송을 보고, 큰 뜻을 잘 알았으나, 여러 사람이 알까 두려워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견성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四. 呈 偈
(4-1) 有一童子 於擡房邊過 唱誦此偈 惠能 一聞 知未見性 未識大意 能 問童子 適來誦者 是何言偈 童者答能曰 邇不知 大師言 生死事大 欲傳衣法 令門人等 各作一偈 來呈看 悟大意 卽付衣法 稟爲六代祖 有一上座名神秀 忽於南廊下 書無相偈一首 五祖令諸門人 盡誦 悟此偈者 卽見自性 依此修行 卽得出離
(4-2) 惠能 答曰 我此踏擡八箇餘月 未至堂前 望上人 引惠能至南廊下 見此偈禮拜 亦願誦取 結來生緣 願生佛地 童子引能至南廊下 能 卽禮拜此偈 爲不識字 請一人讀 惠能聞已 卽識大意 惠能 亦作一偈 又請得一解書 人於西
間壁上 題著 呈自本心 不識本心 學法無益 識心見性 卽悟大意 惠能偈曰
菩提本無樹
明鏡亦無臺
佛性常淸淨
何處有塵埃
又偈曰
心是菩提樹
身爲明鏡臺
明鏡本淸淨
何處染塵埃
院內徒衆 見能作此偈 盡怪 惠能 却入碓房 五祖忽見惠能偈 卽善知識大意 恐衆人知 五祖乃謂衆人曰 此亦未得了
5. 법을 받음(受法)
(5-1) 오조 홍인대사께서 밤중 삼경에 혜능을 조사당 안으로 불러 「금강경」을 설해 주었다. 혜능이 금강경의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而生起心)’의 구절에서 문득 다시 깨쳤다. 혜능은 생각을 일으키는 뿌리가 환하게 밝아졌으며 마음 쓰는 법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감격한 혜능은 자기의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읊었다.
“어찌 자성이 본래 스스로 청정함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생멸하지 않는 것임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스스로 구족함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동요가 없음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스스로 마음 법을 냄을 알았겠습니까?”
그날 밤으로 법을 전해 받으니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이내 오조 홍인대사께서는 단박 깨친 혜능에게 법과 가사를 전하며 말씀하였다.
“네가 육대 조사가 되었으니 가사로써 신표로 삼을 것이며, 대대로 이어받아 서로 전하되, 법은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여 마땅히 스스로 깨치도록 하라.
혜능아, 옛 부터 법을 전함에 있어서 목숨은 실낱에 매달린 것과 같다. 만약 이곳에 머물면 사람들이 너를 해칠 것이니, 너는 모름지기 속히 떠나라.”
(5-2) 혜능이 가사와 법을 받고 밤중에 떠나려 하니 홍인대사께서 몸소 구강 역까지 전송해 주었으며, 떠날 때 문득 홍인대사께서 말씀하였다.
“너는 가서 노력하여라. 법을 가지고 남쪽으로 가되, 회(懷)자 든 고장에 머무르고 회(會)자 든 고장에서는 감추어라. 삼 년 동안은 이 법을 펴려 하지 말라. 환란이 일어날 것이다. 뒤에 널리 펴서 미혹한 사람들을 잘 지도하여, 만약 마음이 열리면 너의 깨침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이에 혜능은 홍인대사를 하직하고 곧 남쪽으로 갔다.
(5-3) 다음 달 초하루 날 홍인대사가 법문을 해야 하는데 몸이 아프다면서 법당에 나타나지 않았다.
제자들은 이상하게 여겨 상황을 알아보니 법의 징표인 가사가 없어진 것을 알았다. 그때서야 대중들은 혜능을 찾아 나섰다.
혜능은 두 달이 지나서 대유령에 이르렀는데, 뒤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쫓아와서 가사와 법을 빼앗고자 하였지만 다들 찾지 못하고 돌아갔다. 오직 한 스님만이 돌아가지 않았는데 성은 진이며 이름은 혜명이며, 선조는 삼품 장군으
로, 성품과 행동이 거칠고 포악하여 바로 고갯마루까지 쫓아 와서 덮치려 하였다.
혜능은 가사를 큰 바위 위에 올려놓고 가져가라고 하였다. 혜명은 아무리 힘을 써서 가사를 가져가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혜명은 순간 법의 신통함에 등골이 오싹하였다. 혜명은 꿇어앉으며
‘제가 짐짓 멀리 온 것은 법을 구함이요, 그 가사는 필요치 않습니다.’ 하였다. 혜능이 고갯마루에서 바로 법을 설하니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바로 이러할 때 스님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혜명이 법문을 듣고 말끝에 마음이 열렸다. 혜명은 삼배를 올려 스승의 예를 다 하였다. 혜능은 혜명으로 하여금 ‘곧 북쪽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을 교화하라.’ 고 하였다.
五. 受 法
(5-1)五祖夜至三更 喚惠能堂內 說金剛經 惠能 一聞 言下 便悟 其夜受法 人盡不知 便傳頓法及衣 汝爲六代祖 衣將爲信 稟代代相傳 法以心傳心 當令自悟 五祖言 惠能 自古傳法 命如懸絲 若住此間 有人害汝 汝卽須速去
(5-2) 能 得衣法 三更 發去 五祖自送能於九江驛 登時 便五祖處分 汝去努力 將法向南 三年 勿弘此法 難起 在後弘化 善誘迷人 若得心開 汝悟無別 辭違已了 便發向南
(5-3) 兩月中間 至大庾嶺 不知向後 有數百人來 欲擬害惠能 奪衣法 來至半路 盡憁却廻 唯有一僧 姓陳 名惠明 先 是三品將軍 性行 麤惡 直至嶺上 來趂犯著 惠能 卽還法衣 又不肯取 我故遠來求法 不要其衣 能 於嶺上 便傳法惠明 惠明 得聞 言下心開 能 使惠明 卽却向北化人來
5보. 보 림(保臨)
(5보-1) 혜능이 조계에 이르러 또 나쁜 사람들에게 쫓겨 사회현으로 피난하여 사냥꾼들 틈에서 지내기를 무릇 열다섯 해 동안 하였다. 오조 홍인대사께서 주신 금강경을 수백 번 독송하여 모두 외웠으며, 사냥꾼들이 사냥을 하러 갈 때는 혼자 참선을 하였다. 때때로 사냥꾼들에게 법을 설하여 선한 마음이 일어나게 하였으며, 그들이 그물을 지켜달라고 하면 산 목숨이 있으면 놓아 주었다. 음식은 나물을 뜯어 끼니를 연명하였다. 사냥꾼들이 없는 해는 나무 밑이나 동굴에서 선정에 들기도 하였다. 하루는 생각하니 이제 법을 펼 때가 되었다.
(5보-2) 마을로 내려 와 보니 광주 법성사에 이르게 되었고, 마침 인종법사가 열반경을 설하는 날이었다.
그때 바람이 불어 찰간에 꽂아둔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한 스님이 “바람이 움직인다.”하고 또 한 스님은 “깃발이 움직인다.”하였다. 듣고 있던 혜능이
“그것은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며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며 당신들 마음이 움직인 것입니다.”
이 소리에 대중들은 놀랐고, 인종법사에게 까지 그 이야기가 들어가 혜능은 인종법사에게 불려갔다.
인종법사는 혜능에게 불법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으며, 혜능의 대답은 글자와 관계없이 분명하게 이치에 맞는 답을 하였다. 인종이 조심스럽게 혜능에게 물었다.
“전부터 들리는 말에 의하면 황매에서의 의발이 남방으로 왔다고 하던데 혹시 거사께서 법을 받으신 분이 아닙니까?”
혜능이 “부끄럽습니다.”하고 답을 하자 인종은 의발을 보여 달라고 하였다. 의발을 보고는 혜능에게 물었다.
“황매에서 어떤 법을 얻었습니까?”
“오직 저 스스로 성품을 보게 할 뿐입니다. 또한, 불법의 이치가 둘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불법이 둘이 아닌 이치입니까?”
“선근에는 둘이 있으니 하나는 떳떳함이며 둘은 떳떳하지 아니함인데, 불성은 떳떳함도 아니며 떳떳하지 아니함도 아니며, 또한 끊어지지 않는 것을 둘이 아니라 합니다.”
“대단합니다. 인종의 법문은 깨어진 기왓장과 같은데 거사님의 법문은 마치 순금과 같습니다.”
여기서 인종은 혜능의 머리를 깎여 주고 스승으로 모시기를 청하였다.
이것이 혜능이 처음으로 법성사에서 동산법문을 열게 된 인연이었다.
5보. 保 臨
6. 정 혜(定慧)
(6-1) 혜능이 이곳 대범사에 와서 머무른 것은 모든 관료, 도교인, 일반인들과 오랜 전생부터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르침은 옛 성인이 전하신 것이다. 혜능 스스로 안 것이 아니니, 옛 성인의 가르침 듣기를 원하는 이는 각각 모름지기 마음을 깨끗이 하여, 듣고 나서 스스로 미혹함을 없애어 옛 사람들의 깨침과 같기를 바란다.
혜능대사가 말씀하였다.
“선지식들아, 보리 반야의 지혜는 세상 사람들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다만 마음이 미혹하기 때문에 능히 스스로 깨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큰 선지식의 지도를 구하여 자기의 성품을 보아라. 선지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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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치게 되면 곧 지혜를 이룰 것이다.
(6-2) 선지식들아, 나의 이 법문은 정(定)과 혜(慧)로써 근본으로 삼는다. 첫째 미혹하여 혜와 정이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정과 혜는 몸이 하나여서 둘이 아니다. 정은 혜의 몸이요,혜는 정의 씀이니, 곧 혜가 작용할 때 정이 혜에 있고, 정이 작용할 때 혜가 정에 있는 것이다.
선지식들아, 이 뜻은 곧 정과 혜가 함께 있는 것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짐짓 정을 먼저 하여 혜를 낸다거나 혜를 먼저 하여 정을 낸다고 해서 정과 혜가 각각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이런 소견을 내는 이는 법에 두 모양이 있다고 생각한다. 입으로는 착함을 말하면서 마음이 착하지 않으면 혜와 정이 함께 있는 것이 아니며, 마음과 입이 함께 착하여 안팎이 한 가지면 정과 혜가 곧 함께 있는 것이다.
스스로 수행함은 입으로 다투는 데 있지 않다. 만약 앞뒤를 다투면 이는 곧 미혹한 사람으로서 이기고 지는 것을 끊지 못함이니, 도리어 법의 아집이 생겨 네 모양[四相]을 버리지 못함이다.
(6-3) 일행 삼매란 일상에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항상 곧은 마음을 행하는 것이다. 「유마경」에 말씀하기를 ‘곧은 마음이 도량이요 곧은 마음이 정토다.’라고 하셨다.
마음에 아첨하고 굽은 생각을 가지고 입으로만 법의 곧음을 말하지 말라. 입으로는 일행 삼매를 말하면서 곧은 마음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부처님 제자가 아니다. 오직 곧은 마음으로 행동하여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일행 삼매라고 한다.
그러나 미혹한 사람은 법의 모양에 집착하고 일행 삼매에 집착하여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곧은 마음이라고 하며, 망심을 제거하여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일행삼매라고 한다. 만약 이와 같다면 이 법은 무정과 같은 것이므로
도리어 도에 장애가 되는 인연이다.
도는 모름지기 통하여 흘러야 한다. 어찌 도리어 정체할 것인가? 마음이 머물러 있지 않으면 곧 통하여 흐르는 것이며, 머물러 있으면 곧 속박된 것이다.
만약 앉아서 움직이지 않음이 옳다고 한다면 「유마경」에서 사리불이 숲 속에 편안히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유마힐이 사리불을 꾸짖었음은 합당하지 않는 것이다.
선지식들아, 또한 사람들에게 ‘앉아서 마음을 보고 깨끗함을 보되, 움직이지도 말고 일어나지도 말라’고 가르치고 이것으로써 공부를 삼게 하는 것을 본다. 미혹한 사람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문득 거기에 집착하여 전도됨이 곧 수백 가지이니, 이렇게 도를 가르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임을 짐짓 알아야 한다.
(6-4) 선지식들아, 정과 혜는 무엇과 같은가? 등불과 그 빛과 같다. 등불이 있으면 곧 빛이 있고 등불이 없으면 곧 빛이 없으므로, 등불은 빛의 몸이며 빛은 등불의 작용이다. 이름은 비록 둘이지만 몸은 둘이 아니다. 이 정과 혜의 법도 또한 이와 같다.
六. 定 慧
(6-1) 惠能 來依此地 與諸官僚道俗 亦有累劫之因 敎是先聖所傳 不是惠能自知 願聞先聖敎者 各須淨心 聞了願自除迷 如先代悟 下是法
惠能大師喚言 善知識 菩提般若之知 世人 本自有之卽緣心迷 不能自悟 須求大善知識 示導見性 善知識 遇悟卽成智
(6-2) 善知識 我此法門 以定慧爲本 第一勿迷言惠定 別 定惠 體一不二 卽定是惠體 卽惠是定用 卽惠之時 定在惠 卽定之時 惠在定 善知識 此義 卽是
定惠等 學道之人 作意 莫言先定發惠 先惠發定 定惠各別 作此見者 法有二相 口說善 心不善 惠定不等 心口俱善 內外一種 定惠卽等 自悟修行 不在口諍 若諍先後 卽是迷人 不斷勝負 却生法我 不離四相
(6-3) 一行三昧者 於一切時中 行住坐臥 常行直心 是 淨名經 云 直心 是道場 直心 是淨土 莫心行諂曲 口說法直 口說一行三昧 不行直心 非佛弟子 但行直心 於一切法 無有執著 名一行三昧 迷人 著法相 執一行三昧 直心 坐不動 除妄不起心 卽是一行三昧 若如是 此法 同無情 却是障道因緣 道須通流 何以却滯 心不住在 卽通流 住卽被縛 若坐不動 是 維摩詰 不合呵舍利弗 宴坐林中 善知識 又見有人 敎人坐 看心看淨 不動不起 從此置功 迷人 不悟 便執成顚 卽有數百般 如此敎道者 故知大錯
(6-4) 善知識 定惠 猶如何等 如燈光 有燈卽有光 無燈卽無光 燈是光之體 光是燈之用 名卽有二 體無兩般 此定惠法 亦復如是.
7. 무 념(無念)
(7-1) 선지식들아, 법에는 단박 깨침이 있으며 점차로 깨침은 없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영리하고 우둔함이 있으니, 미혹하면 점차로 계합하고 깨친 이는 단박에 닦는다.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는 것이 본래의 성품을 보는 것이다. 깨달으면 원래로 차별이 없으나 깨닫지 못하면 오랜 세월을 윤회하게 된다.
(7-2) 선지식들아, 나의 이 법문은 옛부터 모두가 생각 없음[無念]을 세워 종(宗)으로 삼으며, 형상 없음[無相]을 본체로 삼고, 머무름 없음[無住]을 근본으로 삼는다.
어떤 것을 형상이 없다고 하는가? 형상이 없다고 하는 것은 형상에서 형상을 떠난 것이다. 생각이 없다고 하는 것은 생각에 있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며, 머무름이 없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본래 성품이 생각마다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생각과 지금의 생각과 다음의 생각이 서로 이어져 끊어짐이 없으니 만약 한 생각이 끊어지면 법신이 곧 육신을 떠나게 된다.
순간순간 생각할 때에 모든 법 위에 머무름이 없으니, 만약 한 생각이라도 머무르면 생각마다에 머무는 것이므로 얽매임이라고 하며, 모든 법 위에 순간순간 생각이 머무르지 않으면 곧 얽매임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머무름이 없는 것으로 근본을 삼는 것이다.
(7-3) 선지식들아, 밖으로 모든 형상을 여의는 것이 형상이 없는 것이다. 오로지 형상을 여의기만 하면 자성의 본체는 청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형상이 없는 것으로 본체를 삼는 것이다.
모든 경계에 물들지 않는 것을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하며, 자기의 생각 위에서 경계를 떠나고 법에 대하여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백 가지 사물을 모두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제거했다고 하지 말라. 한 생각 끊어지면 곧 다른 곳에서 남[生]을 받게 된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마음을 써서 법의 뜻을 쉬도록 하라. 자기의 잘못은 그렇다 하더라도 다시 다른 사람에게 원하겠는가. 미혹하여 스스로 알지 못하고 또한 경전의 법을 비방하므로 생각 없음을 세워 종으로 삼는 것이다.
미혹한 사람은 경계 위에 생각을 두고 생각 위에 곧 삿된 견해를 일으키므로 그것을 반연하여 모든 번뇌와 망령된 생각이 이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7-4) 그러므로 이 가르침의 문은 무념(無念)을 세워 종으로 삼는다.
세상 사람이 견해를 여의고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서, 만약 생각함이 없으면 생각 없음도 또한 서지 않는다.
없다 함은 무엇이 없다는 것이고, 생각함이란 무엇을 생각하는 것인가?
없다함은 두 모양의 모든 번뇌를 떠난 것이며,
생각함은 진여의 본성을 생각하는 것으로써,
진여는 생각의 본체이며 생각은 진여의 작용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성품이 생각을 일으켜 비록 보고 듣고 느끼고 알지만, 일 만 경계에 물들지 않아서 항상 자재하는 것이다.
「유마경」에 말씀하기를
‘밖으로 능히 모든 법의 모양을 잘 분별하나
안으로 첫째 뜻에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하였다.
七. 無 念
(7-1) 善知識 法無頓漸 人有利鈍 迷卽漸契 悟人 頓修 識自本心 是見本性 悟卽元無差別 不悟 卽長劫輪廻
(7-2) 善知識 我自法門 從上已來 皆立無念爲宗無相爲體無住爲本 何名無相 無相者 於相而離相無念者 於念而不念無住者 爲人本性 念念不住
前念今念後念 念念相續 無有斷絶 若一念斷絶 法身 卽是離色身 念念是中 於一切法上無住一念若住 念念卽住 名繫縛 於一切法上 念念不住 卽無縛也 是以無住 爲本
(7-3) 善知識 外離一切相 是無相但能離相 性體淸淨 是以無相爲體
於一切境上 不染 名爲無念 於自念上離境 不於法上念生 莫百物不思 念盡除却 一念 斷 卽別處受生 學道者 用心 莫不息法意 自錯 尙可 更勸他人 迷不自見 又謗經法 是以立無念爲宗
卽緣迷人 於境上 有念 念上 便起邪見 一切塵勞妄念 從此而生
(7-4) 然此敎門 立無念爲宗 世人 離見 不起於念 若無有念 無念 亦不立 無者 無何事 念者 念何物 無者 離二相諸塵勞念者 念眞如本性 眞如 是念之體 念是眞如之用 自性起念 雖卽見聞覺知 不染萬境而常自在 維摩經 云 外能善分別諸法相 內於弟一義而不動
8. 좌 선(坐禪)
(8-1) 선지식들아, 이 법문 중에 좌선은 원래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깨끗함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또한, 움직이지 않음도 말하지 않으며, 만약 마음을 본다고 하면, 마음은 원래 허망한 것이며 허망함은 허깨비와 같은 까닭에 볼 것이 없다.
만약 깨끗함을 본다고 말하면 사람의 성품은 본래 깨끗함에도 허망한 생각으로 진여가 덮인 것이므로 허망한 생각을 여의면 본래대로 깨끗한 것이다. 자기의 성품이 본래 깨끗함은 보지 않고 마음을 일으켜 깨끗함을 보면 도리어 깨끗하다고 하는 망상[淨妄]이 생기는 것이다.
망상은 처소가 없다. 그러므로 본다고 하는 것이 도리어 허망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깨끗함은 모양이 없으므로, 도리어 깨끗한 모양을 세워서 이것을 공부라고 말하면 이러한 소견을 내는 이는 자기의 본래 성품을 가로막아 도리어 깨끗함에 묶이게 된다.
만약 움직이지 않는 이가 모든 사람의 허물을 보지 않는다고 하면 이는 자성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미혹한 사람은 자기의 몸은 움직이지 아니하고 입만 열면 곧 사람들의 옳고 그름을 말하니, 도에 어긋나고 등지는 것이다. 마음을 보
고 깨끗함을 본다고 하는 것이 도리어 도를 가로막는 인연이 되는 것이다.
(8-2) 이제 너희들에게 말하니, 이 법문 가운데 어떤 것을 좌선이라 하는가? 이 법문 가운데는 일체 걸림이 없어서,
밖으로 모든 경계 위에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좌(坐)이며, 안으로 본래 성품을 보아 어지럽지 않은 것이 선(禪)이다.
어떤 것을 선정이라 하는가?
밖으로 모양을 떠남이 선이며, 안으로 어지럽지 않음이 정이다.
설사 밖으로 모양이 있어도 안으로 성품이 어지럽지 않으면 본래 대로 스스로 깨끗하고 스스로 정(定)인 것이다.
그러나 다만 경계에 부딪힘으로 말미암아 어지럽게 되니, 모양을 떠나 어지럽지 않은 것이 곧 정인 것이다.
밖으로 모양을 떠나는 것이 곧 선이며, 안으로 어지럽지 않은 것이 곧 정이니, 밖으로 선(禪)하고 안으로 정(定)하므로 선정이라고 이름 하는 것이다.
「유마경」에 말씀하기를
‘즉시에 활연히 깨쳐 본래 마음을 도로 찾는다.’ 하였고,
「보살계」에 말씀하기를
‘본래 근원인 자성이 깨끗하다.’ 고 하였다.
선지식들아, 자기의 성품이 깨끗함을 보아라.
스스로 닦아 스스로 지음이 자기 성품인 법신이며,
스스로 행함이 부처님의 행위이며,
스스로 짓고 스스로 이룸이 부처님의 도인 것이다.
八. 坐 禪
(8-1) 善知識 此法門中 坐禪 元不著心 亦不著淨 亦不言不動 若言看心 心元是妄 妄如幻故 無所看也 若言看淨 人性 本淨 爲妄念故 蓋覆眞如離妄念 本性淨 不見自性本淨 心起看淨 却生淨妄 妄無處所 故知看者 却是妄也 淨無形相 却立淨相 言是功夫 作此見者 障自本性 却被淨縛 若不動者 不見一切人過患 是 性不動 迷人自身不動 開口卽說人是非 與道違背 看心看淨 却是障道因緣
(8-2) 今記汝 是此法門中 何名坐禪 此法門中 一切無碍
外於一切境界上 念不起爲坐
內見本性 不亂爲禪
何名爲禪定
外離相曰禪
內不亂曰定
外若有相 內性不亂 本自淨自定
只緣境觸 觸卽亂 離相不亂 卽定
外離相 卽禪
內不亂 卽定 外禪內定 故名禪定
維摩經 云 卽時豁然 還得本心
菩薩戒 云 本源自性 淸淨
善知識 見自性自淨
自修自作 自性法身
自行 佛行
自作 自成 佛道
9. 삼 신(三身)
(9-1) 선지식들아, 모름지기 자기의 몸으로 무상계(無相戒)를 받되, 다 함께 혜능의 입을 따라 말하라. 선지식들로 하여금 자신의 삼신불(三身佛)을 보게 할 것이다.
“나의 색신의 청정법신불에 귀의하며,
나의 색신의 천백억화신불에 귀의하며,
나의 색신의 당래 원만보신불에 귀의합니다.”
색신은 집이므로 귀의한다고 말할 수 없다.
앞에 세 몸은 자기의 법성 속에 있고 세상 사람이 다 가진 것이다. 그러나 미혹하여 보지 못하고 밖으로 세 몸의 부처를 찾고 자기 색신 속의 세 성품이 부처인 것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선지식들은 들어라. 선지식들에게 말하여 선지식들로 하여금 자기의 색신에 있는 자기의 법성이 세 몸의 부처를 가졌음을 보게 할 것이다.
(9-2) 이 세 몸의 부처는 자성으로부터 생긴다.
어떤 것을 깨끗한 법신의 부처라고 하는가?
선지식들아, 세상 사람의 성품은 본래 깨끗하여 만 가지 법이 자기의 성품에 있다. 그러므로 모든 악한 일을 생각하면 곧 악을 행하고 모든 착한 일을 생각하면 문득 착한 행동을 닦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법이 다 자성 속에 있어서 자성은 항상 깨끗함을 알라. 해와 달은 항상 밝으나 다만 구름이 덮이면 위는 밝고 아래는 어두워서 일월성신을 보지 못한다. 그러다가 홀연히 지혜의 바람이 불어 구름과 안개를 걷어 버리면 삼라만상이 일시에 모두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들의 자성도 깨끗함이 맑은 하늘과 같아서, 혜(慧)는 해와 같고 지(智)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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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같다. 지혜는 항상 밝되 밖으로 경계에 집착하여 망념의 뜬구름이 덮여 자성이 밝지 못할 뿐이다.
그러므로 선지식이 참 법문을 열어 주어 미망을 물리쳐 버리면 안팎이 사무치게 밝아 자기의 성품 가운데 만 법이 다 나타나며, 모든 법에 있는 자재한 성품을 청정 법신이라 한다. 스스로 돌아가 의지함이란 착하지 못한 행동을 없애는 것이며 이것을 이름 하여 돌아가 의지함이라 한다.
(9-3) 어떤 것을 천백억 화신불이라고 하는가?
생각하지 않으면 자성은 곧 비어 고요하지만 생각하면 이는 곧 스스로 변화한다.
그러므로 악한 법을 생각하면 변화하여 지옥이 되고
착한 법을 생각하면 변화하여 천당이 되고
독과 해침은 변화하여 축생이 되고
자비는 변화하여 보살이 되며,
지혜는 변화하여 위 세계가 되고
우치함은 변화하여 아래 나라가 된다.
이같이 자성의 변화가 매우 다양하며, 미혹한 사람은 스스로 알아보지를 못한다.
한 생각이 착하면 지혜가 생기며, 이것을 이름하여 자성의 화신인 것이다.
(9-4) 어떤 것을 원만보신불이라 하는가?
한 등불이 능히 천 년의 어둠을 없애고 한 지혜가 능히 만 년의 어리석음을 없애며, 과거를 생각하지 말고 항상 미래만을 생각하라. 항상 미래의 생각이 착한 것을 이름 하여 보신이라고 한다.
한 생각의 악한 과보는 천 년의 착함을 그치게 하고, 한 생각의 착한 과보는 천 년의 악을 물리쳐 없애며,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 미래에 대한 생각이 착함을 보신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법신을 좇아 생각함이 곧 화신이며,
순간순간의 생각마다 착한 것이 곧 보신이며,
스스로 깨쳐 닦음이 곧 돌아가 의지하는 것이다.
가죽과 살은 색신이며 집이므로 귀의할 곳이 아니다. 다만 세 몸을 깨치면 곧 큰 뜻을 알게 된다.
九. 三 身
(9-1) 善知識 惣須自體 以受無相戒 一時 逐惠能口道 令善知識 見自三身佛
於自色身 歸依淸淨法身佛
於自色身 歸依千百億化身佛
於自色身 歸依當來圓滿報身佛 (已上三唱)
色身 是舍宅 不可言歸 向者三身 在自法性 世人盡有 爲迷不見 外覓三身如來 不見自色身中三性佛
善知識 聽 與善知識說 令善知識 於自色身 見自法性 有三身佛
(9-2) 此三身佛 從性上生
何名淸淨法身佛
善知識 世人 性 本自淨 萬法 在自性 思量一切惡事 卽行於惡 思量一切善事 便修於善行 知如是一切法 盡在自性 自性 常淸淨 日月常明 只爲雲覆蓋 上明下暗 不能了見日月星辰 忽遇慧風 吹散 卷盡雲霧 萬像森羅 一時皆現 世人性淨 猶如淸天 慧如日 智如月 智慧常明 於外著境 妄念浮雲 蓋覆 自性 不能明 故遇善知識 開眞法 吹却迷妄 內外明徹 於自性中 萬法皆見 一切法 自在性 名爲淸淨法身 自歸依者除不善行 是名歸依
(9-3) 何名爲千百億化身佛
不思量 性卽空寂
思量 卽是自化
思量惡法 化爲地獄
思量善法 化爲天堂
毒害 化爲畜生
慈悲 化爲菩薩
智惠 化爲上界
愚癡 化爲下方
自性變化甚多 迷人 自不知見
一念善 智惠卽生 此名自性化身
(9-4) 何名圓滿報身佛
一燈 能除千年闇 一智能滅萬年愚 莫思向前 常思於後 常後念善 名爲報身
一念惡報 却千年善止
一念善報 却千年惡滅
無始已來 後念善 名爲報身
從法身思量 卽是化身
念念善 卽是報身
自悟自修 卽名歸依也
皮肉 是色身 是舍宅 不在歸依也
但悟三身 卽識大意.
10. 네 가지 원(四願)
(10-1) “이제 이미 스스로 삼신불에 귀의하여 마쳤으니, 선지식들과 더불어 네 가지 넓고 큰 원을 발할 것이다.
선지식들아, 다 함께 혜능을 따라 말하라.
무량한 중생 다 제도하기를 서원합니다.
무량한 번뇌 다 끊기를 서원합니다.
무량한 법문 다 배우기를 서원합니다.
위 없는 불도 이루기를 서원합니다.
선지식들아, 무량한 중생을 맹세코 다 제도한다 함은 혜능이 선지식들을 제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의 중생을 각자 몸에 있는 성품으로 스스로 제도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자기의 성품으로 스스로 제도한다고 하는가?
자기 육신 속의 삿된 견해와 번뇌와 어리석음과 미망에 본래의 깨달음의 성품을 가지고 있으므로 바른 생각으로 제도하는 것이다. 이미 바른 생각인 반야의 지혜를 깨쳐서 어리석음과 미망을 없애 버리면 중생은 각자 스스로 제도하는 것이다.
삿됨이 오면 바름으로 제도하고
미혹함이 오면 깨침으로 제도하고,
어리석음이 오면 지혜로 제도하고
악함이 오면 착함으로 제도하며
번뇌가 오면 보리로 제도하며,
이렇게 제도함을 진실한 제도라고 하는 것이다.
맹세코 무량한 번뇌를 다 끊는다 함은 자기의 마음에 있는 허망함을 제거하는 것이다.
맹세코 무량한 법문을 다 배운다 함은 위 없는 바른 법을 배우는 것이다.
위 없는 불도(佛道)를 맹세코 이룬다 함은 항상 마음을 낮추는 행동으로 일체를 공경하며 미혹한 집착을 여의고, 깨달아 반야가 생겨 미망함을 없애는 것이다.
곧 스스로 깨쳐 불도를 이루어 맹세코 바라는 힘[誓願力]을 행하는 것이다.”
十. 四 願
(10-1) 今旣自歸依三身佛已 與善知識 發四弘大願 善知識 一時逐惠能道
衆生無邊誓願度
煩惱無邊誓願斷
法門無邊誓願學
無上佛道誓願成
(三唱)
善知識 衆生無邊誓願度 不是惠能 度善知識 心中衆生
各於自身 自性自度
何名 自性自度 自色身中 邪見煩惱 愚癡迷妄 自有本覺性 將正見度
旣悟正見 般若之智 除却愚癡迷妄 衆生 各各自度
邪來 正度 迷來 悟度
遇來智度 惡來善度
煩惱來菩提度 如是度者 是名眞度
煩惱無邊誓願斷 自心 除虛妄
法門無邊誓願學 學無上正法
無上佛道誓願成常下心行 恭敬一切 遠離迷執 覺知生般若 除却迷妄 卽自悟佛道成 行誓願力
11. 참 회(懺悔)
(11-1) “지금 이미 사홍서원 세우기를 마쳤으니 선지식들에게
‘무상참회(無相懺悔)’를 주어서 삼세의 죄장을 없애게 할 것이다.”
대사께서 말씀하였다.
“선지식들아, 과거의 생각과 미래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이 우치와 미혹에 물들지 않고, 지난 날의 나쁜 행동을 일시에 끊어서 영원히 없애버리면 이것이 곧 참회이다.
과거의 생각과 미래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이 어리석음에 물들지 않고 지난 날의 거짓과 속이는 마음을 없애도록 하라. 영원히 끊음을 이름하여 자성의 참회라고 한다.
과거의 생각, 미래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이 질투에 물들지 않아서 지난 날의 질투하는 마음도 없애도록 하라. 자기의 성품에서 만약 없애버리면 이것이 곧 참회인 것이다.
“선지식들아, 무엇을 이름하여 참회라고 하는가?
참(懺)이라고 하는 것은 종신토록 잘못을 짓지 않는 것이며, 회(悔)라고 하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아는 것이다.
나쁜 죄업을 항상 마음에서 버리지 않으면 모든 부처님 앞에서 입으로 말하여도 이익이 없다.
나의 이 법문 가운데는 영원히 끊어서 짓지 않음을 이름하여 참회라 한다.“
十一. 懺 悔
(11-1) 今旣發四弘誓願訖 與善知識 無相懺悔 滅三世罪障
大師言 善知識
前念後念及今念 念念不被遇迷染 從前惡行 一時永斷 自性 若除 卽是懺悔
前念候念及今念 念念不被愚癡染 除却從前矯誑心 永斷名爲自性懺
前念後念及今念 念念不被疸妬染 除却從前疾妬心 自性 若除 卽是懺(已上三唱)
善知識 何名懺悔
懺者 終身不作
悔者 知於前非
惡業 恒不離心 諸佛前 口說無益
我此法門中 永斷不作 名爲懺悔
12. 삼귀의(三歸依)
(12-1) “지금 이미 참회하기를 마쳤으니 선지식들을 위하여 ‘무상삼귀의계(無相三歸依戒)’를 줄 것이다.
대사께서 말씀하였다.
“선지식들아,
‘깨달음의 양족존께 귀의하며,
올바름의 이욕존께 귀의하며,
깨끗함의 중중존께 귀의합니다.
지금 이후로는 부처님을 스승으로 삼고 다시는 삿되고 미혹한 외도에게 귀의하지 않겠으며, 바라건대 자성의 삼보께서는 자비로써 증명하소서.’
선지식들아, 혜능이 선지식들에게 권하여 자성의 삼보에 귀의하게 하니,
부처란 깨달음이며,
법이란 올바름이며
승이란 깨끗함이다.
(12-2) 자기의 마음이 깨달음에 귀의하여 삿되고 미혹하지 않고 적은 욕심으로 넉넉한 줄을 알아, 재물을 떠나고 색을 떠나는 것을 양족존이라고 한다.
자기의 마음이 바름으로 돌아가 생각마다 삿되지 않으므로 곧 애착이 없으며, 애착이 없는 것을 이욕존이라고 한다.
자기의 마음이 깨끗함으로 돌아가 모든 번뇌와 망념이 비록 자성에 있어도 자성이 그것에 물들지 않는 것을 중중존이라고 한다.
보통 사람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날이면 날마다 삼귀의 계를 받는다. 그러나 만약 부처님께 귀의한다고 할 때 부처가 어느 곳에 있으며, 만약 부처를 보지 못한다면 귀의할 곳이 없는 것이다. 이미 귀의할 곳이 없으면 도리어 허망한 것이 될 뿐이다.
선지식들아, 스스로 관찰하여 그릇되게 마음을 쓰지 말라.
경의 말씀 가운데 ‘오직 자신의 부처님께 귀의한다’ 하였고 다른 부처에게 귀의한다고 말하지 않았으니, 자기의 성품에 귀의하지 않으면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이다.“
十二. 三 歸
(12-1) 今旣懺悔已 與善知識 授無相三歸依戒
大師言 善知識
歸依覺兩足尊
歸依正離欲尊
歸依淨衆中尊
從今已後 稱佛爲師 更不歸依餘邪迷外道
願自性三寶 慈悲證明 善知識 惠能 勸善知識 歸依自性三寶
佛者 覺也
法者 正也
僧者 淨也
(12-2) 自心 歸依覺 邪迷不生 少欲知足 離財離色 名兩足尊
自心 歸正 念念無邪故 卽無愛著 以無愛著 名離欲尊
自心 歸淨 一切塵勞妄念 雖在自性 自性 不染著 名衆中尊
凡夫 不解 從日至日 受三歸依戒
若言歸佛 佛在何處 若不見佛 卽無所歸 旣無所歸 言却是妄 善知識 各自觀察 莫錯用意
經中 只卽言自歸依佛 不言歸他佛 自性 不歸 無所歸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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