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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달마관심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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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7,166회 작성일 21-07-3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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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꽃을 뿌리다

꽃을 뿌리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바른 법의 공덕꽃을 널리 설하여 유정들을 이익 되게 하고, 모든 진여의 성품을 두루 다스려서 장엄을 널리 베푸는 것이니, 이 공덕의 꽃은 부처님께서 칭찬하신 것으로 시들거나 떨어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꽃을 뿌리면 한량없는 복을 받는다. 그러나 여래께서는 제자나 중생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꽃이나 초목을 꺾어서 공양하게 했다고 말한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계행을 지키는 것은 천지 안의 삼라만상을 죽이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잘못하여 해치는 것도 큰 죄를 받거늘 하물며 청정한 계율을 범하고, 만물을 손상하면서 복을 구할 수 있겠는가? 이익이 되고자 하지만 도리어 손해가 되는 것을 어찌 옳다고 하겠는가.

 

 

18. 등 밝히는 법

장명등이란 바르게 깨닫는 마음이다. 느끼고 아는 것이 분명함을 등에다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해탈을 구하는 사람은 몸으로 등대(燈臺)를 삼고, 마음으로 등잔을 삼고, 믿음으로 심지를 삼고, 계행을 기름으로 삼으면 지혜의 밝기가 마치 등불 같을 것이다. 항상 이러한 깨달음의 등으로 모든 무명과 어리석음을 비추어야 하며, 이러한 법으로 밝은 깨달음을 열어나가야 한다. 즉 하나의 등불로 백천 개의 등불을 밝히고 이 등불의 밝음이 끝없이 이어지므로 장명등이라 한다. 과거 세상에 연등불이 계셨다는 것도 역시 이러한 뜻이다.

어리석은 중생이 여래의 방편의 말씀을 알지 못하여 허망한 짓을 하고, 유위법(有爲法)에 집착하여 세간의 깨기름(蘇油)으로 등을 켜서 빈 방을 비추는 것으로써 가르침 대로 한다고 하니, 어찌 잘못이 아니겠는가.

그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부처님의 미간(眉間)에 있는 백호광(白毫光)으로도 십만팔천의 세계를 비추고, 신광(身光)을 다 나타내면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게 되는데, 어찌 이런 세속의 등을 빌려서 이익을 삼겠는가. 이런 이치를 깊이 살펴보면 응당 그렇지 않겠는가.

 

 

19. 도를 행하는 법

여섯 차례 도를 행한다는 것은 육근(六根)의 활동이 불도를 행한다는 뜻이다. 모든 밝은 행을 닦아 육근을 조복시켜 영원히 버리지 않는 것을 여섯 차례 도를 행하는 것을 육시행도(六時行道)라 한다. 탑이란 몸과 마음을 뜻한다. 밝은 지혜로 몸과 마음이 돌며 생각이 끊이지 않는 것을 탑돌이라 한다. 과거의 성현들도 일찍이 이도를 행하여 열반을 얻으셨거늘 세상 사람들은 이 이치를 알지 못하니 어찌 도를 행한다 하겠는가. 어리석은 이들은 안으로의 행을 닦지는 않고 밖으로의 과보만을 구하면서 세간의 탑을 돌면서 밤낮으로 설쳐 공연히 피로하기만 하니 참 성품에는 조금도 이익이 없는지라 매우 가엾은 일이다.

 

 

20. 재계를 지키는 법

지재(持齎)에서 재()는 가지런히 한다는 뜻이니 몸과 마음을 부지런히 닦아서 어지럽지 않게 하는 것이며, ()는 보호한다는 뜻이니, 모든 계행을 법답게 지키되 반드시 육정(六情)을 금하고 삼독을 끊으며, 깨닫고 살피는 행을 부지런히 닦아서 마음을 밝혀야 한다는 말이니 이런 이치를 알아야 재계를 지키는 것이 된다.

 

 

21. 밥을 먹는 법

재계를 지키고 보호하는 데에는 다섯 종류의 식사가 있다. 첫째는 법희식(法喜食)으로 부처님의 바른 법에 의지하여 기쁜 마음으로 받들어 행하는 것이다. 둘째는 선열식(禪悅食)이니 안과 밖이 맑고 고요하여 몸과 마음이 즐거운 것이다. 셋째는 염식(念食)이니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여 마음과 입이 서로 응하는 것이다. 넷째는 원식(願食)이니 앉거나 누울 때에 항상 착한 서원을 행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해탈식(解脫食)이니 마음이 항상 청정하여 세상 티끌에 물들지 않는 것이다.

 

 

22. 단식(斷食)

단식(斷食)이란 무명과 악업의 음식을 끊는 것을 말한다.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은 이런 이치를 모르고 몸과 마음을 멋대로 행동하여 악업을 짓고 정욕에 이끌려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서 단지 입으로 먹는 음식만을 끊고는 재계를 지키고 보호한다 하니, 이는 철없는 아이가 썩은 시신을 보고 산 사람이라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23. 예배

예배라 하는 것은 법답게 행하는 것을 말한다. 안으로 밝은 것이 이치의 본질이고, 밖에서 변하는 것이 일의 모습이다. 이치는 버릴 수가 없으나 일이란 나가서 행할 때도 있고 물러나 숨는 때도 있다. 이런 뜻을 이해한다면 법에 의지한다고 할 수 있다. ()라는 것은 공경하는 뜻이며, ()라는 것은 굴복한다는 뜻이니, 진성(眞性)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을 예배라고 하는 것이다.

 

공경하므로 헐뜯지 않고, 굴복하므로 방종함이 없다. 만일 악한 생각이 영원히 멸하고 착한 생각이 항상 지속하면 비록 겉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으나 항상 예배하는 것이다. 모습()이란 육신의 행위다. 세속적인 법을 따라 마음을 낮춰 겸손함을 나타내고자 하기 때문에 겉모습을 굴복시켜 공경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 씀에 따라 드러나기도 하고 감춰지기도 하는 것이니, 겉의 예배를 통하여 마음이 밝아지는 것은 성품과 겉모습이 서로 같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이법(理法)을 행하지 않고 겉모습의 예배만을 집착하고 마음대로 탐··치에 놀아나며 악업을 짓는다면 이는 겉으로 거짓 흉내만 것이니 어찌 예배라 하겠는가. 성인과 현인을 기만하는 짓이니 반드시 윤회를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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