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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달마혈맥론

우리말달마혈맥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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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5,699회 작성일 21-08-18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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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달마혈맥론 






삼계三界가 뒤섞여 일어나지만, 함께 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앞 부처와 뒷 부처가

마음을 가지고 마음에 전하고 문자字를 세우지 않는다. 


묻는다. 

만약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마음을 삼습니까? 


답한다. 

“그대가 나에게 묻는 것이 곧 그대의 마음이고, 

내가 그대에게 답하는 것이 곧 나의 마음이다. 

나에게 만약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그대에게 답할 수 있겠으며, 

그대에게 만약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나에게 물을 수 있겠는가? 

나에게 묻는 것이 곧 그대의 마음이니, 

시작 없는 아득한 과거로부터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이,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모두가 그대의 본래 마음이고 

모두가 그대의 본래 부처이다.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말 역시 그와 같다. 

이 마음을 제외하고 얻을 수 있는 다른 부처는 결코 없으며, 

이 마음을 떠나 밖에서 깨달음과 열반을 찾을 수는 없다. 

스스로의 본성은 진실하여, 

원인도 아니고 결과도 아니다. 


법은 곧 마음이라는 뜻이다. 

스스로의 마음이 바로 깨달음이며 스스로의 마음이 바로 열반이니, 

마음 밖에心外서 부처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부처와 깨달음이 모두 어디에 있는가? 

비유하면 손으로 허공을 붙잡으려는 것과 같으니, 붙잡을 수가 있겠는가? 

허공은 다만 이름일 뿐이고 모양이 없어서, 가질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다.

허공을 붙잡을 수 없는 것처럼, 

이 마음을 없애고 밖에서 부처를 찾을 수는 결코 없다. 


부처란 스스로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인데, 

어떻게 이 마음을 떠나 따로 부처를 찾을 것인가? 

앞 부처와 뒷 부처가 다만 마음이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마음이다. 

마음 밖에 부처 없고 부처 밖에 마음 없다. 

만약 마음 밖에 부처가 있다고 한다면 부처는 어디에 있는가? 

마음 밖에 이미 부처가 없는데 

왜 부처라는 견해를 일으켜서 서로 속이고 속는가? 


​본래 마음을 깨닫지 못하면 

저 무정물에게 사로잡혀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만약 믿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속일 뿐 이익이 없다. 


부처에게는 허물이나 근심이 없는데, 중생이 거꾸로 되어 있다.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해도 자기 마음이 바로 부처이다. 

만약 자기의 마음이 바로 부처임을 안다면,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지 않을 것이니, 

부처가 부처를 헤아리지는 않는다. 


마음을 가지고 부처를 찾는다면 부처를 알지 못한다. 

밖에서 부처를 찾기만 하면, 모두 자기 마음이 바로 부처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부처를 가지고 부처에게 절할 수는 없으며, 

마음을 가지고 부처를 생각할 수는 없다. 


부처는 경經을 외우지도 않고, 

부처는 계戒를 지키지도 않고, 

부처는 계戒를 범하지도 않는다. 

부처는 지키고 범함이 없으며, 

선善도 악惡도 짓지 않는다. 


​만약 부처를 찾고자 한다면, 

반드시  

본성을 보아야 하니, 

본성이 곧 부처이다.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한다면, 

염불念佛하고 경經을 외우고

재齋를 지내고 계戒를 지킨다고 하여도 이익될 것이 없다. 

염불하면 인과因果를 얻고,

경經을 외우면 총명聰明을 얻고, 

계戒를 지키면 하늘에 태어날 수 있고, 

보시布施하면 복된 과보果報를 얻지만, 

끝내 부처를 찾지는 못한다. 


만약 스스로 밝게 깨닫지 못하면, 

반드시 선지식을 찾아서 생사生死의 근본을 밝혀내어야 한다.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한다면, 

선지식이라고 할 수가 없다. 


만약 이와 같지 못하면, 

비록 12부경을 설명할 수 있더라도 역시 생사윤회를 면하지 못할 것이고, 

삼계에서 받는 고통을 벗어날 기약이 없을 것이다. 


옛날 선성善星 비구는 12부경을 외울 줄 알았지만, 

도리어 스스로는 윤회를 면하지 못했으니, 

본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성이 이미 그와 같았는데, 

오늘날 사람들이 서너권의 경론經論을 

강의할 수 있는 것으로 불법法이라고 여긴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다. 


만약 자기의 마음은 알지 못하면서 

쓸데없는 글들만 외운다면,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다. 

부처를 찾고자 한다면, 

바로 본성을 보아야만 한다. 

본성이 곧 부처이고, 부처는 곧 자재한 사람이며, 

할 일이 없는 사람이고, 조작함이 없는 사람이다. 


만약 본성[自性]을 보지 못하면, 

종일 아득하고 어두워서 밖으로 쫓아다니며 찾겠지만, 

부처를 찾아보아야 원래 부처는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비록 얻을 수 있는 한 물건도 없지만, 

아직 깨닫지를 못했다면, 역시 선지식을 찾아가 

반드시 끈기 있게 공부해서 마음이 알아차리도록 해야 한다. 

살고 죽는 일이 크니, 헛되이 시간을 보내서는 안된다. 


스스로를 속여 봐야 이로울 것이 없다. 

비록 값진 보배가 산더미로 쌓여 있고 일가 권속이 갠지스강의 모래처럼 많더라도, 

눈을 뜨면 보이지만, 눈을 감아도 보이는가? 

그러므로 유위有爲의 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만약 급히 스승을 찾지 않는다면,

헛되이 일생을 보낼 것이다. 

불성은 자신에게 있지만, 

스승을 말미암지 않는다면, 

끝내 밝혀낼 수가 없다. 


스승을 말미암지 않고 

깨닫는 자는 매우 희귀하다. 

만약 자기 스스로 인연을 깨달아 성인聖人의 뜻을 얻는다면, 선지식을 찾을 

필요가 없으니, 이런 사람은 곧 태어날 때부터 자질이 남다른 뛰어난 공부꾼이다. 


만약 아직 깨달아 알지 못했다면, 

반드시 부지런히 끈기 있게 선지식을 찾아 배워야 하니,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깨달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스스로 밝게 깨닫는다면, 

배우지 않아도 될 것이니, 

어리석은 사람과는 같지가 않다. 


흑백을 분별하지도 못하면서 망령된 말로써 불교를 알린다면,

부처를 비방하고 법을 헛되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무리는 법을 말하는 것이 내리는 빗물처럼 유창하더라도

모두가 마구니의 말일 뿐 부처의 말은 아니다. 


스승은 마구니의 왕이고 제자는 마구니의 백성이니, 

어리석은 사람이 저 백성을 떠맡아 이끌어 

모르는 사이에 생사生死의 바다에 떨어진다. 


대저 본성을 보지도 못한 사람이면서 망령되이 부처라고 자칭한다면, 

이러한 중생은 죄가 큰 사람이다, 

일체 중생을 속여서 마구니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다.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고서도 12부 경전의 가르침을 말한다면, 

이것은 모두 마구니의 말이며 마구니 집안의 권속이지, 

불교 집안의 제자는 아니다. 


​아직 흑백을 구분하지도 못하는데,

무엇에 의지하여 생사를 면할 것인가? 

만약 본성을 본다면 곧 부처이고, 

본성을 보지 못하면 곧 중생이다. 


만약 중생의 본성을 떠나서 따로 얻을 불성이 있다면, 

부처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중생의 본성이 곧 불성佛性이다.

본성 밖에 부처가 없고, 부처가 곧 본성이다. 

이 본성을 제외하고는 얻을 부처가 없고, 

부처를 제외하고는 얻을 본성이 없다. 


  

묻는다. 

만약 본성을 보지 않더라도, 염불하고 경을 외고 보시하고 계를 지키고 

정진精進하고 널리 복되고 이로운 일을 한다면, 성불할 수 있습니까? 


답한다. 

“성불할 수 없다.“ 

다시 묻는다. 

“어찌하여 성불할 수 없습니까?“ 


답한다. 

“얻을 수 있는 조그마한 법이라도 있다면, 

이것은 유위법有爲法이고 

인과법因果으로서, 과보報를 받는 것이니 곧 윤회輪廻하는 법이다.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고서, 어느 때에 불도道를 이룰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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