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절 규성내외별상문(規城內外別相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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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절 규성내외별상문(規城內外別相門)
도를 닦는 마음을 만약 굳세게 하려면 반드시 마음을 규범의 영역(일상적인 규범과 관례) 밖에 의탁해야 한다.
“어떠한 등의 일을 이름하여 규범의 영역 밖이라고 합니까?”
“대승(大乘)과 소승(小乘)의 견해를 바로잡지 않고, 보리심(菩提心)을 발하지 않으며, 나아가 일체종지(一切種智)를 바라지 않고, 선정을 이해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탐욕에 집착하는 사람을 천하게 여기지 않고, 나아가 부처님의 지혜마저 바라지 않는다면 그 마음은 자연히 한가해지고 고요해진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해탈을 취하려고도 하지 않고지혜를 구하려고도 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사람은 법사(法師)나 선사(禪師) 등에게 현혹되거나 산란함을 면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만약 마음에 뜻을 두어서 범부나 성인을 바라지 않고 해탈을 구하지 않으며, 다시 나고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또한 지옥을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무심(無心)에 곧바로 머물러야 비로소 하나의 규범에 둔한 마음(規鈍心)을 이룬다. 만약 모든 현인과 성인이 백 천겁에 신통변화를 짓는 것을 볼지라도 원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미치거나 현혹됨을 면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어떻게 해야 구역 밖에서 사는 것이 됩니까?“
”인(仁, 어진 마음), 의(義, 정의로움), 예(禮, 예절과 질서), 지(智, 슬기롭고 현명함), 신(信, 믿음)이라는 것은 이름하여 규범의 영역이며, 대승(大乘), 소승(小乘)이라는 기본적인 정서도 또한 이름하여 구역이라 하고, 생사(生死)와 열반(涅槃)도 또한 규범의 영역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 규범의 영역 밖에서 살고자 한다면 나아가 범부다 성인이다라는 명자(名字)는 없는 것이며, 유위법(有爲法)으로서도 알 수 없는 것이고, 무위법(無爲法)으로서도 알 수 없는 것이며, 지혜로서도 알 수 없는 것이니, 그것을 아는 것과 알아지는 것이 똑 같아지는 것을 또한 이름하여 구역 안이라고 한다.
범부심(凡夫心)을 발하지 않고, 성문심(聲聞心)도 발하지 않으며, 보살심(菩薩心)도 발하지 않고, 불심(佛心)도 발하지 않으며, 일체의 마음을 발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이름하여 규범의 영역 밖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만약 일체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려면 알음알이를 짓지도 말고 일으키지도 말며, 의혹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이름하여 일체 세간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의(한낱) 어떤 도깨비를 만나서 도깨비가 말을 하면 곧 도깨비라는알음알이를 지으니 그것을 애써서 지침을 삼아 논할 수 가 없는 것이다.
만약 어떻게 해야 깨달음을 사용하여 작용하게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이 백 천만 대중에게 명령하는 소리를 들으면 곧 마음이 움직이니, 자기 마음의 법을 잘 관해 보라. 어떻게 언설과 문자를 사용할 수 있겠는가?“
”어떤 것을 이름하여 '순박한 마음'이라 하며, 어떤 것을 이름하여 교묘하게 속이는 마음이라 합니까?“
”문자와 언설을 이름하여 교묘하게 속이는 것이라 하며, 물질과 비물질(정신)이 똑같아 지며, 가고 머무르며 앉고 눕는 것과 시행하고 거동하는 모든 것이 순박한 마음이며, 나아가 일체의 괴롭고 즐거워하는 등의 일을 만날지라도 그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이름하여 '순박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무엇을 이름하여 바르다 하고, 무엇을 이름하여 삿되다고 합니까?“
”분별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 바른 것이며, 마음에 헤아리는 법이 있는 것이 삿되다고 하는 것이며, 나아가 삿되고 바름을 지각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이름하여 바른 것이다. 경에 이르시기를 ‘바른 도에 머무는 사람은 이것은 삿된 것이고 이것은 옳은 것이다라고 분별하지 않는다.’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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