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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절 무아무집여공문(無我無執如空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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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3,350회 작성일 21-07-23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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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절 무아무집여공문(無我無執如空門)



”세속 사람들이 가지가지 학문을 닦고 있습니다만 어찌하여 도를 얻을 수가 없습니까?“



”그들은) 자기라는 견해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도를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자기라고 보지 않는다면 곧 도를 얻을 수 있다. 


자기라는 것은 나(자아)라는 아집(我執)이다. 


지인(至人, 현인, 성인)은 괴로움을 만나도 근심하지 않고, 즐거움을 만나도 기뻐하지 않는


 까닭에 자기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즐거워하지 않는 것은 자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허무(虛無)에 도달하게 되면 자기를 숭상하는 것이 저절로 잊혀지는데, 


다시 어떤 물건을 두어서 잊지 않으려 하겠는가? 천하에 자기를 잊으려는 것이 


자기가 있는 것이다. 만약 자기를 잊으려할 때에 일체법(一切法)이 본래 자기가 없는 것인데 


횡설수설하여 사량계교(思量計校)해서 곧 생노병사(生老病死)와 우비고뇌(憂悲苦惱)와 


한열풍우(寒熱風雨) 등의 뜻과 같지 않는 일을 감수하나니 이것은 모두 망상이 나타난 것이며, 허깨비(환상)와 같은 것에서 연유한 것이다. 


가고 머무는 것은 자기에게서 연유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반연(攀緣)을 좇아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허깨비이다. 


횡설수설하여 거역하려는 마음을 내면 가거나 머무는 것을 들으려하지 않으니 


그런 까닭에 번뇌가 있게 된다. 자기에게 집착하기 때문에 곧 가고 머무는 것이 있게 된다. 


다만 가고 머무는 것이 자기로 말미암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자기라는 것은 곧 자기라는 객관(我所)이 된다. 이것은 허깨비 같은 법(존재)이니


 머물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허깨비를 거역하지 않으면 사물을 접촉하여도 걸림이 없으며 


만약 능히 변화를 거역하지 않으면 사물을 접촉하여도 후회하지 않는다.]


묻기를, [모든 법(존재)이 이미 텅 비었는데 누가 도를 닦습니까?]

답하길, [누구인가가 있다면 마땅히 도를 닦아야 하겠지만, 만약 누구인가가 없다면 


곧 모름지기 도를 닦을 필요가 없다. 누구라는 것, 이것 또한 나(자아)라는 아집이다.


 만약 내가 없다면 사물을 만나도 옳고 그르다는 견해를 내지 않는다. 


옳고 옳다고 하는 것은 내가 스스로 그것을 옳다고 하는 것이지 사물이 옳은 것이 아니다. 


그르고 그르다고 하는 것은 내가 스스로 그것을 그르다고 하는 것이지 


사물이 그른 것이 아니다.


 가령 바람이나 비와 파랑·노랑·빨강·하얀 색깔 등에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좋고 좋다는 것은 내 스스로 그것을 좋다고 할뿐이지 사물이 좋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눈·귀·코·혀·몸과 색상·소리·냄새·맛·감촉 등에 비유해 보면 알 수 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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