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절 시도비도차별문(是道非道差別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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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절 시도비도차별문(是道非道差別門)
묻기를, [경에 이르시기를, '그릇된 도에 머물러서 불도를 통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답하길, [그릇된 도를 행한다는 것은 명칭을 버리지 않고 형상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통달한다는 것은 곧 명(名)에 나아가 보면 명(名)이 없고 형상에 나아가 보면 형상이 없다.
또 이르기를, '그릇된 도를 행한다는 것은 탐욕을 버리지 않고 애착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통달한다는 것은 탐욕에 나아가면 탐욕이 없으며 애착에 나아가면 애착이 없는 것이다.
그릇된 도를 행한다는 것은 고통을 버리지 않고 즐거움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고통에 나아가면 고통이란 없는 것이고 즐거움에 나아가면 즐거움이란 없는 것을 이름하여
통달이라고 하며, 나고 죽는 것을 버리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통달이라고 한다.
그릇된 도에 머문다는 것은 태어남에 나아가면 태어남이 없고 남이 없는 것을 취하지도
않으며, 자아에 나아가도 자아가 없고 자아가 없는 것을 취하지도 않는 것을 이름하여
불도를 통달한다고 한다.
만약 능히 그릇됨에 나아가 그릇됨이 없되 그릇됨이 없는 것도 취하지 않는
이것을 이름하여 불도를 통달하였다'라고 하니,
요약해서 그것을 말하면 마음에 나아가 마음이 없는 것을 이름하여
마음의 도를 통달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묻기를, [어떻게 일체법(一切法)을 통달합니까?]
답하길, [사물에 나아가 견해를 일으키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통달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사물에 나아가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사물에 나아가 탐욕을 일으키지 않으며,
사물에 나아가 분주하지 않는 것을 모두 이름하여 통달이라고 하는 것이다.
물질에 나아가 물질이 없다는 것이 바로 물질을 통달한 것이 되고,
존재에 나아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이름하여 존재를 통달했다고 하는 것이다.
생(生)에 나아가 생(生)이 없다는 것을 이름하여 생을 통달하였다고 하는 것이며,
법(法)에 나아가 법이 없다는 것을 이름하여 법을 통달했다는 것이니,
사물을 만나 곧 바로 통달한 이러한 사람은 혜안(慧眼)이 열려서
또한 사물에 부딪쳐도 상이하게 보지 않는 것이다.
다른 것에 나아가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이름하여 다른 것을 통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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