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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절 건립바라밀다문(建立波羅密多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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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4,974회 작성일 21-07-23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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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절 건립바라밀다문(建立波羅密多門)



묻기를, 

[여섯 가지 바라밀이 모든 지혜를 낼 수 있습니까?]

답하길, 

[바라밀이라는 것은 자타(自他)가 없는 것이니, 그 누가 받고 얻을 것인가! 

중생의 무리가 공업(共業, 함께 짓는 업)의 과보(果報)로 분별된 복은 

형상과 더불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난승여래(難勝如來)와 그 모임 중에 최하의 걸인 등에 이르기까지 

대비로써 법시(法施)를 구족(具足)하였다"하시니, 

그러므로 이름하여 단나(檀那, 보시)바라밀이라 한다. 

일이 없고 원인도 없으며,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아끼는 것도 없으며, 

본래의 성품이 여여(如如, 있는 그대로)하여 끝까지 그릇됨이 없는데 

그 누가 옳음을 구하겠는가! 옳고 그름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곧 계(戒)의 본체가 청정한 것이니 이름하여 

시라(尸羅, 지계)바라밀이라고 한다. 

마음은 안팎과 피차가 없는 것이니 어찌 음성의 본성에 의지할 것인가! 

물들이고 집착하는 것이 없으며 평등하여 허공과 같으니 

이름하여 찬제( 提 인욕)바라밀이라고 한다. 

(감각기관의) 모든 한계를 떠나서 끝까지 계발하여 모든 형상에 

머물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비리야(毗梨耶, 정진)바라밀이라고 한다. 

삼세(三世)가 형상이 없고 찰라(刹那)에도 머물지 않는다. 

현상의 일과 진리에 처해서 고요하거나 시끄러움에 머물지 않는 본성 

그대로를 이름하여 선나(禪那)바라밀이라고 한다. 

열반과 진여(眞如)는 본체를 볼 수가 없는 것이며, 

희론(戱論)을 일으킬 수도 없는 것이다. 

심의식(心意識)을 여의고 방편에 머물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여여(如如)라고 한다. 

쓸 수가 없는 것이므로 써도 쓰는 것이 아니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지혜가 있다는 것은 방편으로 헤아리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러므로 이름하여 반야(般若, 지혜)바라밀이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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