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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보리 행론

입보리행론 차례및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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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5,713회 작성일 21-08-16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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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입보리행론 


        저자 : 적천보살 

        우리말 번역 : 정명 김성규 


적천보살(寂天, santideva, 685 – 763)

남인도 현강국의 왕자로 태어나 왕위 계승 전날 밤 꿈에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출가함. 숲속에서의 수행 후 인도 나란타사에서 정식 승려가 되어 선관을 엄밀하게 닦았다. 대중 앞에서 스스로 체득한 깨달은 경지에서 흘러나오는 『입행론』을 독송한 후 인도 전역을 돌며 불법을 전파하였다. 




차례 


해제

제1품 보리심의 이익  

제2품 업장 참회 

제3품 보리심을 지니다 

제4품 방일품 

제5품 바른 앎을 지키다 

제6품 인욕 

제7품 정진 

제8품 선정 

제9품 지혜 

제10품 회향






해제


보리심을 주로 설하는 『입보살행론』, 이 논은 모든 제불보살들이 같이 행하는 도이며(同行道), 모든 안락을 얻는 원인이며 모든 중생이 선취(善趣)에 태어나는 근원이다.

대승 불법을 닦고 배우는 불자가 되어 당신이 현종을 닦는가, 혹은 밀종을 닦는가를 논할 것 없이 이 논전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이 논의 내용을 통달하지 않았다면 대승의 기초인 보리심을 일으킬 방법이 없고, 만약 이 논에 통달할 수 있다면 이미 84000 법문의 심요를 모두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불법은 듣기 어렵고 기회와 인연은 순식간에 바로 사라져간다. 수행인들이 성실하게 듣고 익히기를 희망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을 하나같이 듣고 익힐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이익을 얻는 것이 적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들을 때 정미하지 못하고 듣고 나서도 가져 닦지 않으면 오직 하나의 지식을 얻었을 뿐 이외에 많은 의의가 없다. 수행인들이 배워 원만하게 닦고 잘 곗으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기를 희망한다. 만약 시작할 때 중시하지 않아 끝날 때 스스로 수확이 없다고 느낀다면 후회해도 때가 늦을 것이다. 『입행

론』은 인도 적천보살이 지은 것인데, 현재 우리가 참고하는 한문본은 대만의 여석(如石) 법사가 티베트 본에 의거하여 번역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전에 이 논을 광범위하게 강의한 사람이 없는 것 같으며 티베트 불교에서는 이 논에 여러 가지로 다르게 전수해 주는 방식이 있다.

현재 우리는 화지 린포체의 비결, 즉 『입행론』의 과목의 분석표인 『명경의(明鏡義)』를 가지고 강해한다. 이 과목의 분석표는 가장 잘 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 법왕 여의보는 이와 같이 평가한 적이 있다. 티베트와 인도에서는 분명 『명경의』보다 더 수승한 『입행론』 과목의 분석표를 찾을 방법이 없다. 


다음에서는 정논은 정론과 사론으로 나뉜다. 『유가사지론』에는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다. 100권의 거대한 저서 『유가사지론』에 대하여, 티베트와 중국의 불교학자들은 매우 중시한다. 그러나 이 논의 저자에 대하여 두 곳의 학자들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티베트의 사료 기록에 따르면 이 논의 저자는 무착보살이다. 무착보살은 도솔천에 나아가 직접 미륵보살로부터 자씨오론 등의법을 전구 받았다. 나중에 인도의 바나빠라 삼림에서 문자로 기록하였고, 또 세친논사를 대승으로 이끌기 위하여 『유가사지론』을 저술하였다. 이 대승 불법의 양대 산맥 중의 한 종파의 발원지를 기념하기 위하여 그 땅을 ‘파야스’라 명명하였다. 중국에서는 『유가사지론』의 저자가 미륵보살로 되어 있다.

『유가사지론』의 관점에 띠르면 정론은 셋으로 나누는데 구의론具義論, 이고론離苦論, 근수론

勤修論이다. 사론에는 여섯 가지가 있는데, 무의론無義論은 많은 고금의 소설, 잡지 같은 것으로 진실한 가치와 의의가 없는 것들이 여기에 속하며, 사의론邪義論은 사견, 단견, 인과의 비방을 선양한 각종 사마 외도의 논전들이 여기에 속한다. 간악론奸惡論은 전쟁, 투쟁 등을 선양한 모든 것들이 여기에 속하며 중생들에게는 이익이 없다. 이비론離悲論은 대비심과 거리가 먼 논전들이며, 예를 들면 중생들을 어떻게 살해할 것인가를 소개한 책들이다. 어떻게 짐승을 죽이고, 낚시를 하며, 뱀과 벌레를 잡는가와 같은 종류의 책들이 여기에 속한다. 문의론聞義論은 진실한 내용이 없고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 위하여 화려한 어휘를 모아

문자 유희를 하는 책들이 여기에 속한다. 변변론辯論論은 세간의 각종 진리와 무관한 것으로 의미없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책들이 여기에 속한다. 예를 들면 홍루몽 학회의 온갖 쟁론들이다.

입행론에서 서술하는 것은 대승불법의 정수로 중생의 고통을 없애기 위하여 발보리심, 수보리행을 광범위하게 서술한 진실한 수행법이다. 저자 역시 문수보살의 섭수가피를 얻어 직접 제법 실상을 증득한 대승보살이다. 이치상 당연히 정론이며 불교사에 있어서 당대에 견줄만한 것이 없는 위대한 저서이다.

티베트 불교의 고승 대덕은 저서를 해설하건 논전을 해설하건 간에 경론의 명칭을 매우 중요시한다. 뿐만 아니라 경론 앞면에는 모두 범어 명칭이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전승을 따라 경론 명칭에 대하여 비교적 자세한 해설을 하였다. 경론 명칭의 명명에는 일정한 방식이 있다.

해심밀경에는 4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지명에서 취한 것, 인명에서 취한 것, 비유에서 취한 것, 의미에서 취한 것이다. 지명에서 취한 것으로 능가경이 있다. 부처님께서 법을 설한 장소가 능가산이라서 능가경이 된 것이다. 인명에서 취한 것으로는 미륵청문경, 육조단경, 요범사훈, 등이 있다. 비유로서 취한 것으로는 도간경, 금강경 같은 것이 있으며, 경의 의미를 알 수 있는 비유로써 명칭을 취하였다. 의미로써 취한 것에는 십지경, 보리도차제광론 등이 있는데, 그 서술한 내용으로 명칭을 취하였다. 위에서 서술한 네가지 방식 외에도 숫자를 따른 것으로 삼십사본생전같은 것이 있고, 시간을 따른 것으로 현겁경 같은 것이 있다. 티

베트 불교에서의 논사는 논을 지을 때 대부분 논의 의미에 따라이름을 지었다. 아티샤존자가 티베트에 들어갔을 때 특별히 이러한 명명 방식을 숭상하고 찬탄하였다.

경론의 명명에는 매우 깊은 의미를 담을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경에서 “만약 명칭을 붙이지 않으면 세간 사람은 진리에 우매해지기 때문에 부처님은 방편을 교묘하게 하여 제법에 다른 여러명칭을 붙였다.”라고 말하였다. 상근기의 사람은 논의 이름만 듣고도 바로 전론의 의미를 통달 할 수가 있다. 맥팽 린포첸은 경, 율, 논을 열람할 때 늘 목록만 보았을 뿐인데 바로 많은 경론의 뜻을 통달하였다. 중근기의 사람 역시 명칭에 따라 대략적 의미를 알 수 있다. 하근기의 사람은 명칭에 따라 논전을 찾기 쉬울 수 있다.

현재 논전 앞에 범어 명칭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 입행론과 같이 티베트 경론 앞에 모두 범어 명칭이 있는데 여기에는 4가지가 갖추어져야 한다. 전해온 내력이 청정하고 스스로 가피를 얻고 선근을 심고 은덕을 기억하는 것을 나타낸다.

첫째는 논전의 전해온 내력이 청정함을 나타낸다. 범어는 인도의 중요한 언어중 하나로 고대 인도에서 논을 짓는 것은 매우 엄격하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당시 만들어진 논은 유통되기 전에 반드시 수백 논사의 검증을 거쳐야만 했다. 그 논의 저자는 논에서 세운 명제와 대의로 다른 논사들과 변론해야만 한다. 만약 승리하면 그 논저는 바로 승인을 얻을 수 있었고, 저자도 큰 예우를 받았다. 만약 저저의 내용이 사문 외도에 속하여 중생에게 해를 끼친다면 저자는 양손이 잘렸으며, 종신토록 지극한 고통의 형벌을 받았다. 이러한 엄격한 제도 때문에 당시 출간된 범어 논점의 관점은 순수하고 매우 깊고 예리했다. 이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범어로 된 논의 의미가 순정함을 나타내었다. 우리도 논을 저술하는 정신을 고인에게 배워야만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여러 사람들이 모여 검토하고 높은 자리에 놓고 잘 공양하고 예를 갖추어 읽어야만 한다. 사악한 작품에 대해서는 개꼬리에 묶어 불붙여 태워버려야만 한다.

둘째는 스스로 가피를 얻는다. 범어는 삼세제불이 성불경계를 나타낼 때 법을 전하면서 사용한 언어로 가피력이 매우 크다. 논전의 첫머리에는 범어를 써서 제불의 가피를 얻을 수 있다.

셋째는 보는 사람이 선근을 심는다. 논전 첫머리의 범어 명칭은 보고 듣는 사람들이 선근을 심을 수 있게 한다.

넷째는 은덕을 기억한다. 논 첫머리의 범어를 보면 이 논전을 지은이, 번역하고 널리 강의한 논사와 번역사들을 생각나게 할수 있다. 우리의 복덕은 천박하여 여래를 친견하고 여래의 법음을 직접 들을 수 없고, 오직 대대로 내려온 고승 대덕에 의지하여 불법의 청정 원류가 아직 중단되지 않아 우리의 메마른 마음 밭으로 콸콸 흘러 들어오는 것이다. 이 선현들의 은덕을 기념하기 위하여 논전 앞에 범어로 쓴 명칭을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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