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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달마이입사행론 게시판 내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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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절 무생이변문(無生離邊門)묻기를,[무엇을 이름하여 모든 존재는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니라고하는 것입니까?]답하길,[마음의 본체는 본체가 없는 것이 바로 진리의 본체이니,마음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존재가 아니며,써도 다함이 없기 때문에 비존재도 아니다.다시 다음에 써도 항상 텅 비었기 때문에 존재가 아니며,비었어도 항상 쓰이기 때문에 비존재도 아니다.본체는 이미 자아가 없기 때문에 존재가 아니며,인연을 따라 일어나기 때문에 비존재도 아니다.범부는 유(有)에 머무르고 소승은 무(無)에 머무르며,보살은 유(有)나 무(無)에도 …

  • 제32절 법계보리차별문(法界菩提差別門)묻기를, [법계의 체성(體性, 실체)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답하길, [일체처가 다 이 법계의 처소이다.]묻기를, [법계의 체성 가운데 계를 지키거나 파하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답하길, [법계의 체성 가운데에는 범부와 성인, 천당과 지옥이 없다.또한 옳음과 그름, 괴로움과 즐거움 등이 없어서 항상 허공과 같은 것이다.묻기를, [어느 곳이 깨달음의 처소입니까?]답하길, [행하는 곳이 바로 깨달음의 처소이며,법을 보는 곳이 바로 깨달음의 처소이고, 앉는 곳이 바로 깨달음의 처소이며,법을 보는…

  • 제29절 대도각오역난문(大道覺悟易難門)주석하여 말하길,[지혜로운 사람은 사물에 맡기고 자기에게 맡기지 않기 때문에 곧 취하고 버리는 것이 없으며, 또한 어기고 순응함도 없다.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에게 맡기고 사물에 맡기지 않기 때문에 곧 취하고 버리는 것이 있으며 곧 어기고 순응함이 있다.만약 허공처럼 넓고 방대하게 천하를 잊을 수 있다면 바로 이것이 사물에 맡겨 따르는 때이다. 사물에 맡겨 따르는 때는 곧 쉬워지고 변화하는 사물에 어기고 거역하는 것은곧 어려워지는 것이다.사물이 만약 오고자 하거든 그것에 맡겨 거역하지 말며,사물이 …

  • 제28절 대도원근분별문(大道遠近分別門)묻기를, [대도(大道)는 가까운 것입니까 먼 것입니까?]답하길, [아지랑이와 같아서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으며,거울 속의 얼굴도 또한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으며,허공의 소나무 겨우살이 꽃( )과 바늘꽃이 나부끼는 일 등도 또한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다. 만약 이것을 가깝다고 말한다면 온 세상에서 그것을 구하여도 얻을 수 없으며,만약 이것을 멀다고 말한다면 밝고 밝아 눈앞에 있게 된다.경과 논에 이르시길,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없는 것이 만물의 본성이다."라고 하시니,이렇…

  • 제27절 생사열반무이문(生死涅槃無二門)생사(生死)가 열반(涅槃, 모든 존재의 이상적인 상태)과 같기 때문에 버리지 않는 것이니,생(生)에 나아가면 생이 없고 사(死)에 나아가면 사가 없는 것이다.남을 버리고서 무생(無生)에 들어가기를 기다리지 말 것이요, 죽음을 버리고서죽음이 없음에 들어가기를 기다리지 말라. (본래) 적멸(寂滅)이기 때문에바로 이것이 열반이다.경에 말씀하시기를, "일체중생이 본래로 적멸이기에 다시 멸할 것이 없다"라고 하시고,또 말씀하시기를, "일체법이 모두다 이 열반이다"라고 …

  • 제26절 사정일상동체문(邪正一相同몸門)묻기를, [경에 이르시기를, "외도(外道)는 모든 견해를 즐기고,보살은 모든 견해에 움직이지 않고, 천마는 생사(生死)를 즐기고,보살은 생사도 버리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답하길, [사견(邪見)이 정견(正見)과 같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것이요,외도가 모든 견해를 즐긴다는 것은 이른바 유(有, 존재)라는 견해이면서무(無, 비존재)라는 견해이다. 존재하는 것에 나아가 보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비존재에 나아가 보면 비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이름하여 움…

  • 제25절 시도비도차별문(是道非道差別門)묻기를, [경에 이르시기를, '그릇된 도에 머물러서 불도를 통달하리'라고 하였습니다.(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답하길, [그릇된 도를 행한다는 것은 명칭을 버리지 않고 형상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통달한다는 것은 곧 명(名)에 나아가 보면 명(名)이 없고 형상에 나아가 보면 형상이 없다.또 이르기를, '그릇된 도를 행한다는 것은 탐욕을 버리지 않고 애착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통달한다는 것은 탐욕에 나아가면 탐욕이 없으며 애착에 나아가면 애착이 없는 것이다.그릇된 도를 행한다는 것은 고통을 버리지…

  • 제24절 무아무집여공문(無我無執如空門)”세속 사람들이 가지가지 학문을 닦고 있습니다만 어찌하여 도를 얻을 수가 없습니까?“”그들은) 자기라는 견해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도를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만약 자기라고 보지 않는다면 곧 도를 얻을 수 있다.자기라는 것은 나(자아)라는 아집(我執)이다.지인(至人, 현인, 성인)은 괴로움을 만나도 근심하지 않고, 즐거움을 만나도 기뻐하지 않는까닭에 자기라고 보지 않는다.그러기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즐거워하지 않는 것은 자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허무(虛無)에 도달하게 되면 자기를 숭상하는 것이 …

  • 제23절 일진법계무유문(一盡法界無遺門)보살은 법계로써 사택을 삼고 사무량심(四無量心=慈, 悲, 喜, 捨)으로써 계를 받는 도량으로 삼는다.무릇 작용하고 시행하는 존재가 결국 법계의 마음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마음 자체가 바로 법계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대가 가지가지 언행을 하고 날뛰더라도 모두 법계를 벗어나지 않고, 또한 법계에 들어가지도 않는다.만약 법계로써 법계에 들어간다고 하면 곧 어리석은 사람이다. 보살은 명료하게 법계를 꿰뚫어 보기 때문에 이름하여 법안(法眼)이 청정하다고 한다. 법이 나고 멸하며 머무름이…

  • 제22절 심품이둔별상문(心品利鈍別相門)”어떤 사람을 이름하여 이근(利根, 근기가 예리한, 뛰어난)이라 하며, 어떤 사람을 이름하여 둔근(鈍根, 근기가 둔한, 무능한)이라 합니까?“”스승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현실을 따라 진리를 보는 자를 이름하여 근기(根機)가 예리한 사람이라 하고, 스승이 말씀하시는 가르침을 따라서 해탈을 얻는 사람을 이름하여 근기가 둔한 사람이라고 한다.스승께서 말씀하시는 가르침을 따라서 법을 듣는 것에도 또한 이근(利根)과 둔근(鈍根)이 있다.스승의 말씀을 듣되 유(有, 존재한다는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불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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